류권홍.gif

인천시를 비롯한 4자 협의체는 대체 매립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재 매립지 사용을 2018년 1월 중단하면 쓰레기를 처리할 장소가 없어져 쓰레기 대란이 불가피한 실정에 깊이 공감하면서 형식적으로는 10년 동안 수도권 매립지 사용연장에 합의하였다.

합의문은 또한 서울·경기·환경부는 지난 20여 년 간 매립지 운영에 따른 매립지 인근 주민과 인천시민의 고통에 인식을 같이 했고, 4자 협의체는 수도권 폐기물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인천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철학과 정의는 없고 현실론과 꼼수 그리고 단서만 존재하는 잘못된 합의이다.

우선, 3-1공구까지의 매립을 연장하면서 가능해진 10년 동안의 매립기간 안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대체매립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내 쓰레기는 내가 처리한다는 발생지처리의 원칙, 기존 수도권 매립지 주변 주민들의 피해를 구제하겠다는 피해배상의 원칙은 없이 단지 주민들의 ‘고통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는 정도로 합의는 끝났다.

대부분의 합의문들은 합의에 이르고 합의를 합리화하며 동시에 해석의 기준이 되는 근본 원칙들을 선언한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가장 큰 문제인 매립지 사용 연장에 대한 합의에서 환경정의나 주민 피해에 대한 원칙은 언급도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다. ‘단서의 함정’이다. 즉, 합의에 따르면 10년 이내에 대체매립지가 조성되지 못하는 경우, 매립지 잔여부지의 15%인 106만 평방미터에 대한 사용 연장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106만 평방미터는 3-1공구보다 약간 넓은 규모이다. 수도권 매립지에 매립되는 쓰레기의 반입량은 점진적으로 감소해오고 있는데, 결국 이런 추세라면 추가 연장을 포함해서 공식적으로는 20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30년까지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매립연장을 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언론들은 10년 연장으로 해결책을 찾은 훌륭한 합의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계약서의 해석이 주된 업무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인천시가 10년 연장을 중요한 합의 사항으로 강조한다면 본인들은 다 알면서도 시민들을 속이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가 작성한 합의문의 내용도 이해 못하면서 서명한 아주 무능한 집단으로 이해된다.

지금부터 약 8년이 지난 시점부터 협정서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발생할 것이고, 대체매립지를 조성하지 못한 서울시는 추가 106만 평방미터에 대한 매립면허 연장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현실론에 발목 잡힌 인천시는 매립면허 연장에 동의하고 말 것이다.

인천시가 매립면허 연장을 해준 대가로 취득한 것 중 제일 큰 것이 서울시와 환경부 소유 1,690만㎡의 매립 토지 소유권을 인천시에 이전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천시장은 땅 좀 받고 정의를 버린 것이다. 그 땅의 경제적 가치가 1조 5천억 원이면 뭐하고 이보다 더 많으면 또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모르겠다. 매립이 종료되면 그 즉시 서구 지역의 환경이 개선될 것이며, 공항 및 수도권 근접성, 잘 조성된 청라국제도시 등의 연쇄효과로 인해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이 창출될 것이다. 동시에 세계 최대의 매립지를 가지고 있는 인천이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게 되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 인천시민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시장이 대형 사고를 쳤지만 인천은 시민들과 우리 후손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시장의 월권에 대해 따져야 하고, 시민들은 잘못된 합의의 효력이 없음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시민들은 움직일 것이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