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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안성만세고개 조각공원 조성사업을 담당했었다. 극일(克日)·평화(平和)·공존(共存)을 테마로 하는 작품 10점을 공모하여 설치했다. 안성3·1운동기념관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에 ‘잠기다’라는 제목의 작품(작가 천성명)이 있다. 마치 죄수복 같은 물방울 무늬의 옷을 입고 쪼그려 누운 사람의 몸을 뚫고 식물이 자라나는 괴기스러운 모습의 작품이다. 일제의 폭압에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민중의 삶을 묘사했으리라…10여년이 지난 지금, 경기창작센터가 위치한 ‘선감도’에서 이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은 무슨 조화일까?

일제 조선총독부는 부랑아들을 교화시키겠다는 명목으로 1942년 선감도에 ‘선감원’을 세웠다. 10대 소년 수백명을 잡아들였으며 독립군 자손들도 그 곳에 수용되어 교관들의 엄격한 통제 속에 군사훈련에 강제노역을 당하다가 병들어 죽기도 하고, 일부는 고문과 굶주림과 학대, 그리고 노역에 지쳐 탈출을 시도하다 갯벌에 빠지고 조류에 휩쓸려 죽어갔고 그 어린생명들은 비석 하나 없는 선감원 인근 야산에 매장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 당시 선감원 부원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8살 때 선감도에서 2년간 생활을 했던 이하라 히로미츠씨가 “아! 선감도(井原 廣光, 1989)”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해방 이후에도 ‘선감학원’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잡혀온 아이들의 생활은 1982년도 폐쇄되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우리의 청소년들은 역사의 질곡을 헤매다 끊임없이 죽어갔다고 한다. 70년대 초반 수용되었던 주인공(임용남)의 실화를 다룬 “임삐용의 천국(최건수, 1993)”, 「사건내막」이라는 인터넷 주간지에 2014년 말까지 연재되었던 소설 “지옥극장-선감도 수용소의 비밀(김영권, 2015)” 속에 당시의 모습이 생생히 증언되어 있다.

그동안 죽어간 어린생명들이 묻힌 묘지마다 그 위에 수십년간 자라난 나무들을 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바로 내가 천성명의 작품에서 본 그대로였던 것이다.

지난 어느 날 선감학원출신 생존자들이 안산시에 요구하여 일부 나무들이 베어졌다. 주변마을 사람들은 땔감용으로 그 나무들을 가지고 갔다. 어린 생명들의 뼈와 살을 먹고 자란 나무로 밥을 해 먹는 것이다. 보다 못한 생존자들이 경기창작센터에 일부 베어진 나무들을 갖다놓았다. 언젠가는 뜻있는 작가를 만나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묘지동산에 세워질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묘지 위의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가지가 솟아나 숲을 이루어 가고 있다.

생존자들 일부는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쳐다보기도 싫고, 꿈에서도 발을 들여놓고 싶지도 않은 이곳을 가끔씩 방문한다.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는 8월에는 선감학원 생활을 숨기고 살아왔던 생존자들 몇몇이 가족을 이끌고 와서 하룻밤 묶고 가겠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당시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떨쳐버리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후벼 파지는 가슴을 안고 나는 오늘도 아침저녁으로 그들의 주검들이 집단적으로 묻혀있는 다시 숲이 되어가고 있는 묘지동산을 지나친다.

서정문 경기창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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