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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결혼생활 20년이 넘은 부부들의 이혼’을 일컫는 황혼이혼의 원산지는 일본이라고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고령화 사회의 진행과 함께 필연적으로 황혼이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는 통계에 의해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2014년 혼인 지속기간별 이혼 구성비에 관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이혼부부 중 28.7%가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영위해 온 부부라고 한다.

황혼이혼의 원인은 성격차이, 경제적 애로, 자녀문제, 외도, 학대 등 다양할 것이나,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은퇴 후 금전적으로 궁핍해지다 보면 서로 간에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고, 심할 경우 가정폭력의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주택연금 상담을 하러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어르신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노년기 경제력의 중요성을 항상 느끼곤 하는데, 몇 달 전 뵀던 한 어르신이 ‘이사 문제 때문에 황혼이혼 문턱까지 갔다 왔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게 떠오른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들어보니 이렇다. 젊었을 때부터 없는 살림에 자식들 키우면서 월세방, 전세방 전전하며 이사를 다닌 게 수십 번인데 그게 너무 신물이 났더란다. 과거 주택임대차보호법도 없던 시절 세입자에게 집주인은 하늘과 같았다. 6개월 만에도 집세를 올리는가 하면 애들이 시끄럽다고, 자기네 애들이랑 싸웠다고 등등 사소한 문제로 나가라면 세입자는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다. 그 땐 포장이사도 없어 매번 짐 싸고 풀기를 반복하는 고된 작업을 직접 해야 했으니 그 고생이야 속된 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어렵게 네 자식들 키우며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집 하나 장만해서 이사 걱정 없이 사나 했더니 이젠 당장 생활비, 병원비가 없어서 집을 팔고 다시 전세로 갈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고생한 결과가 다시 그 지겨운 이사라고 생각하니 우울증이 생기고 노부부 간에 허구한 날 부딪치신다는 것이다.

듣다 보니 가슴이 먹먹한 것이 어르신의 처지도 안타까웠지만, 그 분의 모습이 동 시대를 살아 온 수많은 어르신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시엔 안 먹고 안 입고 자녀들 키우느라 노후를 대비할 틈이 없었다. 정신없이 자식들 교육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아프고 약해진 부부 둘 뿐이다. 몸은 아프고 쓸 돈은 소소히 생기는데 따로 사는 자녀는 부모가 아픈지 돈이 필요한지 일일이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노후를 책임지라고 선뜻 요구하는 부모도, 나이든 부모 봉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녀도 그리 많지 않다.

얼마 전 다시 그 어르신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엔 일생동안 일군 목숨 같은 집을 떠나 또 다시 이삿짐을 싸야하나 해서 걱정이었는데 그것은 기우였을 뿐 주택연금에 가입한 덕분에 부부간에 불화도 사라지고 내 집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게 되어 너무나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 나라에서 기초연금을 얹어 주니 마치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데 대한 위로 같기도 하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격려금 같아 뿌듯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오히려 필자가 고마움을 느꼈다.

또 하나 요즘 상담을 하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주택연금 가입을 염두에 두고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미리 주택연금 가입 시 인정되는 주택가격, 연금수령액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주택을 구입하시는 것이다. 심지어 이 집을 사서 가입하면 연금이 매달 얼마씩 나온다고 했으니 나중에 틀리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으시는 분도 있다. 집을 갖고 계시면서도 주택연금 가입을 망설이는 마음이 지배적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주택연금 가입을 목적으로 그에 걸맞은 집을 구입하시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그만큼 주택연금을 처음 선보이던 2007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주택연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고, 주택연금을 운영하고 있는 주택금융공사 또한 이러한 변화에 적극 부응하여 올해 1월 정부3.0 추진과제 중 하나인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 통합 제공’의 일환으로 가교형 주택연금을 출시하는 등 더 많은 어르신들이 주택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어르신들이 인식의 전환을 통해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기를, 적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황혼이혼을 생각하는 가슴 아픈 일은 없기를 소망해 본다.

유기철 주택금융공사(HF) 경기남부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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