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회 예산 편성 실험 '룰'부터 만들자] (1) 선택과 집중해야 '나눠먹기'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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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지방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심사해 삭감 또는 증액만 해온 지방의회가 예산을 직접 편성하는 전례없는 정치실험이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방의회(경기도의회)와 예산을 함께 편성하겠다며 지방정부(경기도)의 권한 일부를 넘겨주기로 하면서 시도되고 있는 전인미답의 길이다. 경기 연정(聯政)의 연장선상에서 파생된 새로운 정치 모델인데, 예산 전문가들은 ‘쪽지예산’보다 더 심각한 예산 왜곡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부일보는 본격적인 예산 편성 권한 분배 실험에 앞서 예상되는 문제점과 대안 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①선택과 집중해야 ‘나눠먹기’ 안돼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열린 7월 임시회에서 이른바 ‘메르스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100억원의 예산을 직접 편성했다. 도의회가 예산을 직접 편성하는 것은 1991년 개원한 이래 처음이다.

국회는 물론이고 지방의원들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삭감 또는 증액 등을 통해 확보한 예산의 사용처를 바꿔놓거나 ‘쪽지예산’으로 끼워넣는 경우는 흔한 일이지만, 의회 몫으로 주어진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예산의 사용처를 결정한 것은 국내 정치사를 통틀어 전례없는 사건이었다.

도의회는 100억원의 예산 대부분을 ‘메르스+가뭄’ 추가경정예산안이라는 취지에 맞게 쓰임새를 결정하면서 신뢰의 첫 단추는 잘 끼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3일 “일부 메르스와 무관한 예산이 편성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목적에 맞는 사업에 쓰여지도록 해줬다”면서 “사실상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도 큰 틀에서 방향을 잘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오는 9월 임시회에 제출할 예정인 제 2회 추경안에도 도의회 몫 예산을 예비비 등에 미리 확보해주는 방법으로 예산 편성권한을 도의회와 나눌 계획이다.

추경 규모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도의회 몫은 경기도가 자체 사업에 쓸 수 있는 예산(가용재원)의 10%내외인 1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산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이 일회성 정치 이벤트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적으로 정착될 것인지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예산 전문가는 “지난 추경의 경우 메르스와 가뭄 피해를 지원한다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도의원들이 예산 나눠먹기를 할 틈새가 없었지만 이번 추경부터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예산안이 백지상태에서 편성되기 때문에 도의회 몫도 선택의 폭이 매우 넓어져 도의원들이 마음대로 쓸 곳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나눠먹기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도의회가 예산 나눠먹기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움직일 수 없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며 ‘선택과 집중’식 예산 편성이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예컨대, 도의회 몫 예산을 전액 노인과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에만 집중투자하겠다는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거나 기존 사업 예산에 보태주는 방식으로 예산의 쓰임새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경기도 예산 사정에 밝은 한 지자체 고위 관계자는 “지역구를 무시할 수 없는 도의원들의 특성상 큰 틀에서 예산 편성 방향을 정해놓지 않을 경우 푼돈으로 쪼개질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면서 “예산 투자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구를 위해 확보한 예산이 자칫하면 쓰여지지도 못하고 반납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추경때 일선 시·군에 균등배분하도록 한 전통시장 마케팅 지원 예산처럼, 모든 시·군이 해당되는 공통적인 사업을 정해놓고 지원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 같은 경우 경기도 예산이 지원되면 모든 시·군이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영기자/bothcamp@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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