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회 예산 편성 실험 '룰'부터 만들자] 상임위 배분 땐 투자효과 없는 푼돈 불보듯 뻔해
긴급 추경 편성의 목적이 메르스와 가뭄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았다고는 하지만, 그런대로 예산 나눠먹기 유혹을 뿌리쳤다는 평가를 얻었다.
사실상 예산을 편성할 시간이 없었는데도 합법적인 예산 나눠먹기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신뢰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룰을 잘 만든 결과였다.
도의회 여야 지도부는 이른바 '메르스 추경'의 취지를 살려야 하다는 대승적인 합의 아래, 10개 상임위원회(운영위 제외)중 보건복지, 농정해양 등 관련 상임위 4곳에 예산을 배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100억원중 90억원이 상임위를 거쳐 메르스와 가뭄 대책 사업에 편성됐다. '선택과 집중' 방식이 예산 편성의 목적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내부 견제 장치가 된 셈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3일 "만약 도의회가 10개 상임위에 10억원씩 균등하게 분배했을 경우, 메르스와 가뭄을 빙자한 지역구 예산을 끼워넣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면서 "추후에도 지난 예산때 처럼 큰 틀을 정해놓으면 불필요한 오해를 자초하지 않고 예산 편성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개인이 입법기관이고, 상임위 이기주의가 팽배한 도의회 특성상 선택과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상임위 균등배분 방식으로 예산을 나눠쓰게 될 경우 도의회 몫 예산은 푼돈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오는 9월 추경에 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100억원 안팎의 예산이 10개 상임위에 10억원씩 균등 배분된다고 가정해보자.
각 상임위별로 11~15명씩 구성된 상임위원들이 고작 10억원의 쓸 곳을 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도의원 1인당 고작 7천만~9천만원 안팎의 예산을 편성하게 되는 셈이다.
그나마 상임위 내부 의견이 조율되지 않을 경우 10억원은 갈기갈기 쪼개져서 투자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푼 돈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본예산 역시 마찬가지다. 백지수표 규모가 1천억원대에 달하더라도 10개 상임위로 나누면 100억원, 각 상임위에서 의원별로 또 분배하면 7억~9억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비록 가정에 가정이긴 하지만, 100억원의 예산이 1억원, 1천억원이 10억원의 효과 밖에 내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도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승철(수원5) 도의회 새누리당 대표의원은 "이번 예산은 내년 본예산을 앞둔 워밍업"이라면서 "남경필 지사가 이번 예산을 다루는 모습을 보고 본예산에서도 편성권을 나눠줄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이번 기회에 예산 투자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도의원들이 출신 지역에 예산 선물을 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집행부가 편성권의 일부를 도의회에 위임한 것인데, 상임위로 나누게 되면 예산이 쪼개지게 된다"면서 "보통 예산과 다르기 때문에 도의회 차원에서 사용처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임곤 경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양 당이 예산 합의를 해야 한다"면서 "예산은 정치의 일부인 만큼 양당 대표 차원에서 합의를 통한 방향 제시를 하지 않으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고 본 예산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상임위에 예산을 분배하면 나눠먹기가 될 수 밖에 없다"면서 "사전 협의를 통해 큰 사업을 고르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의회 내부에서도 상임위 분배 방식은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서진웅(부천4) 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간사는 "상임위별로 나누는 방식은 지역구 얘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좋지 않다"면서 "조만간 열리는 예결위 워크숍에서 어떤 기준을 갖고 이번 추경을 다룰 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철(새정치민주연합·비례) 예결위원도 "지난 추경 때 가뭄과 메르스에 예산을 집중시켰던 것처럼 예산 규모, 상임위와 관계없이 중요성에 따라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면서 "다만, 양당과 의회 차원에서 어떤 방향에 집중할 것인지를 정리해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예산 전문가들은 예산 편성권을 활용해 도의원 전원이 출신 지역에 예산 선물을 안겨준 전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경기도 관계자는 "지난 추경때 도의회가 편성한 전통시장 마케팅 지원사업 예산은 향후 예산 편성 권한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면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도의회가 예산 편성권한을 백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시·군을 통해 주민들에게 예산이 쓰여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의회는 지난 추경때 도의회 몫 100억원중 30억원을 메르스 피해 전통시장 마케팅 지원 사업에 편성해 각 시·군당 1억원 내외의 경기도 예산이 지원되도록 한 바 있다.
양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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