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 고려시대의 경기문화] (27) 국도, 개경의 문화유산
⑦고려미술의 정수-고려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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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로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까지 일체의 중생을 구제한다. 관세음 보살과 함께 가장 많이 신앙되는 보살이기도 하다. 일본 네즈박물관 '지장보살도'(사진 왼쪽)와 미국 메트로폴리탄 '지장보살도'.
 
우리 역사에서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왕조는 관료적 귀족국가이다. 목가구나 흰 백자가 대변하듯 검소하며 단순하여 검박(儉朴)으로 정리되는 조선과는 달리, 고려는 청자와 고려불화가 보여주듯 화려하고 섬세하며 화사한 세련된 미감(美感)으로 정리된다. 조선왕조보다는 조금 짧으나 고려 또한 500년 가까이 지속된 국가이다. 통일신라에 앞서 당(唐)이, 조선에 앞서 명(明)이 건립된다. 고려는 중국 송(宋)의 천하통일에 앞서 발 빠르게 먼저 칭제건원(稱帝建元)의 황제국가로 출발한다. 중국의 명과 청(淸)을 합한 시기가 조선이며, 고려 또한 송과 원(元) 두 왕조를 합한 기간이다.

#세 번째의 만남-아름다운 고려 청년과의 만남

첫사랑의 열병이 대변하듯 의욕과 열정으로 생기발랄하고 아름답던 상큼하고 풋풋한 청춘을 제외하면 삶의 여정에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가슴 떨리는 설렘의 순간은 몇 번이나 될까. 단 위대한 예술품과의 만남 또한 나이와 무관하게 가슴 설레는 일이다. 명품이나 걸작이 주는 감동은 시간을 초월한다. 흘러가버린 단순한 과거의 일상과는 다르다. 조선 초 최고의 명품인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처음 접한 1986년 8월은 바로 조금 전 일 같고 떠올리면 늘 되살아난다. 모든 슬픔과 상처도 결국은 잊어지는 것이나, 오히려 깊은 감동은 이와 달리 잘 지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진행형인 양, 살아 꿈틀 거리는 생명체와 같다고나 할까. 그것은 명작이 지닌 생명력 때문이리라.

한국회화사의 맥을 잡고 기초를 다진 이동주(李東洲·1917-1997) 선생은 1970년대 초부터 일본 내 우리 옛 그림들을 발굴해 지면에 발표했는데 고려불화들도 포함되었다. 고려불화들은 한 때 막연히 송, 원대 중국불화로 간주되었다. 고려불화 중 명품 중에 하나인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 ‘지장보살도’와의 첫 만남은 1985년 10월 청명한 가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관 시절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개최한 ‘조선통신사’(1985.10.29-12.1) 전시의 현지 관리관으로 파견되었다.

도쿄국립박물관 관장의 추천서를 통해 네즈미술관 유물격납고 깊숙이 간직된 이 그림을 조사할 수 있었다. 도록을 통해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실물을 접했을 때 첫 인상은 신라 삼화령 애기불이나 국보 83호 금동반가상 등 삼국시대 불상과 통하는 친근미를 느꼈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았고, 수염은 있으나 선풍도골(仙風道骨)로 끼끗하고 해맑은 앳된 모습은 고려시대 왕자나 명문세가의 자제로 보였다.

이로부터 훌쩍 10년이 지나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한 ‘대고려국보전(大高麗國寶展) -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1)’(1995.7.15-9.10)을 통해 서울 한복판에서 재회가 이루어졌다. 그때의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15년이 지난 뒤인 2010년 가을 세 번째 조우가 있었으니 첫 대면한 지 무려 25년이 흐른 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불화를 주제로 기획한 ‘고려불화대전, 700년만의 해후’(2010.10.12-11.21)에도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이 홀로 서있는 형식의 지장보살도는 일본 주구지(中宮寺)와 조고신시지(朝護孫子寺) 등에도 있다. 특히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는 소장품인 민머리를 한 현 상태가 매우 양호한 또 한 폭이 있다. 이 그림은 1999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한국실 개관전시에서 본격적으로 공개되었고 2010년 불화전에 귀국해 네즈미술관 것과 함께 출품되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는 현 고궁박물관 자리에서 국보 78호와 83호를 함께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에 버금가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인도의 지신(地神)에서 비롯한 지장보살은 억압과 나쁜 꿈, 죽어가는 자의 구원자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정토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흔히 삭발한 승려의 모습이나 두건을 쓰고 있다. 지닌 물건으론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주(如意珠)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 지장신앙은 신라부터 시작해 고려시대 아미타신앙과 더불어 관세음보살과 함께 협시로 등장하는 아미타삼존, 홀로 입상 또는 좌상의 독존, 시왕을 거느린 경우 등 다양한 형식을 보인다.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불화 - 청자와 쌍벽(雙璧)을 이룬 조형미술

일반인들에게 고려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물으면 고려청자가 단연 수위를 점한다. 혹자는 단심가(丹心歌)를 남긴 충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崔瑩·1316-1388) 장군,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877-943)이나 개혁군주 공민왕(恭愍王·1330-1374) 등 인물을 들기도 한다. 혹자는 인류 최초의 발명품인 금속활자나 팔만대장경 그리고 1970년대 말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고려불화를 꼽기도 한다.

조형미술에 있어 재질면에서 바탕이 돌이나 금속인 공예나 조각과 달리 종이와 비단인 서화(書畵)는 유기물로 좀 벌레 등 충식(蟲蝕)과 화재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화재에 약해 몽골과 왜 및 만주족 등 이민족의 간헐적인 대규모 침입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이 이 분야이다. 열에 한 둘이 남아 있을 뿐이며 현존하는 것들도 이를 창출한 시대나 서화가에 있어 최고의 걸작인가 여부도 문제시 된다. 도자기는 깨졌더라도 썩지 않기에 한 곳에 있으면 퍼즐 맞추듯 복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종이나 비단에 불이 닿으면 한 줌도 안 되는 재로 변한다.

때론 뜻밖의 비장된 명품(名品)들이 ‘나 여기 있소’하고 나라 안팎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유출된 것은 강탈당했거나 국가 간 대외교류 측면에서 선물로 보내져 이역(異域) 하늘 아래서 가녀린 숨을 견지해온 것들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접하는 옛 서화들의 존재는 그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감상목적에서 그려진 것은 아니나 우리 고대회화를 대변하는 고분벽화(古墳壁畵)와 중세회화를 짐작케 하는 고려불화 그리고 조선시대 초상화(肖像畵)는 이들이 도달한 예술적 성취에서 한자문화권을 벗어나 세계미술사에서도 주목된다.

고려불화의 경우는 1970년대 말 일본 야마토분가간(大和文華館)에서 열린 특별전을 통해 빛 보게 되었다. 이곳은 일본 나라(奈良)시에 위치한 사립미술관으로 중국과 서양을 비롯해 우리 문화재를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 옛 그림을 주제로 여러 차례 특별전시를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1986년에는 재일동포 두암 김용두(金龍斗·1921-2002) 옹이 수집한 서화 50점을 중심으로 한 전시인 ‘조선의 회화-사천자컬렉션(李朝の繪(그림 화)-泗川子コレクション)’을 열었다. 이를 바탕으로 도자기를 포함해 1994년 국립중앙박물과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귀국전시가 열렸다.

또한 1987년 조선시대 병풍 29틀로 ‘조선의 병풍(李朝の屛風)’을 열었다. 화원에 의해 제작된 왕실과 사대부가 소용의 화사한 고사인물·산수·어해·화조·사군자·문자도·책가도 장식병풍을 비롯해 자수 여염집 민화병풍 등에 이르기까지 내용과 소재가 다양했다. 1996년 여름(8.29-9.29)에 연 ‘조선의 회화-이웃 국가의 명징한 아름다음의 세계(李朝繪(그림 화)-隣國の明澄美の世界)’는 조선 초부터 말에 이르는 출품작 53점 가운데 40여 점이 17세기 이전 조선시대 그림인 점에서도 주목된다. 더욱 괄목되는 것은 이곳에서 1978년 고려불화의 아름다움과 위상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고려불화(高麗佛畵)’를 들게 된다.

이어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이 주최한 전술한 ‘대고려국보전’과 먼저 연 ‘고려(高麗), 영원한 미(美)-高麗佛畵特別展’(1993.12.11-1994.2.13)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주제의 결정판인 ‘고려불화대전, 700년만의 해후’(2010.10.12-11.21)가 열렸다. 국내외 도처 40여 처에 흩어진 고려불화가 망라되었다. 중국 송·원·서하(西夏)·일본 불화들을 함께 비교해서 전시한 전무후무한 전시였다. ‘이역에 흩어진 고려불화 귀향 잔치’이며 ‘뿔뿔이 흩어진 고려불화, 고국에 모였다’ ‘유려하면서도 웅장한 ‘그 멋’...한국미술 정수 뽐낸다’ 등 당시 일간지 헤드라인이 전하듯 5년이 흘렀으나 전시의 감동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려불화의 아름다움 - 불심(佛心)과 예술적 완성도

불화는 부처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어 이해를 돕고 불단과 사찰 내외 벽면을 장엄하려는 목적에서 제작된 모든 그림을 지칭한다. 예배의 대상으로서 부처님의 모습을 그린 존상화(尊像畵), 불교 설화 중 교훈적인 장면을 표현한 한 전생설화(前生說話)와 불전도, 화엄경이나 법화경 같은 경전 중의 교훈적인 내용을 압축해서 그린 변상도(變相圖), 사원의 건물이나 불상 등을 장식하는 불화 등으로 그 형태는 족자 및 벽화 두루마리‘卷’ 및 첩(帖) 형태 등 다양하다. 이를 통해 믿는 이들은 감명을 받고 법열을 느껴 종교적인 실천행동을 위한 교육적 효과에 있다.

기원전 2세기 경 인도의 아잔타석굴과 같은 석굴사원 내부의 벽화로서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4세기 후반 불교가 전해진 이래 불화가 그려졌으니 5세기 고구려 장천리 벽화고분의 예불도(禮佛圖), 일본의 법륭사의 금당벽화(金堂壁畵), 통일신라 법화경(法華經)의 표지를 비롯해 고려시대 사경(寫經) 내 변상도 등이 전하며 고려와 조선의 화려한 채색과 세밀한 필선이 불화는 우리 회화사에서 크게 주목된다.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고난구제·현세의 복·극락왕생 등 기원이 담긴 관음보살도·아미타불도·지장보살도 등 정토계 불화가 주류를 점하며, 불경의 삽화격인 변상도, 승상도 포함된다. 고려불화의 특징은 색채는 은은한 녹색과 적색 및 갈색 위주로 화려하며 금니(金泥)를 사용한 섬세한 선묘(線描), 고려청자의 통하는 화려한 무늬가 공간을 빼곡히 채움, 기법의 답습, 다양하지 않은 도상의 종류,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고려후기 것들이 주류를 이룸 등을 들게 된다. 성격은 귀족적 불화로 왕실과 호족 중앙귀족 등 권문세가들이 국가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 및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며 시주로 성행했다. 경전 중에 화엄경과 법화경 등 변상도가 주류이며 현세의 평안과 미래의 안락을 비는 아미타불과 관음과 지장보살 등을 즐겨 그렸다. 이에 훤칠하고 위풍당당한 왕자나 명문세가의 귀공자를 보는 듯하다.

고려불화는 현란하면서도 정리된 채색의 사용, 화풍의 특징, 예술적인 성취 등 모두에서 우리 민족이 이룩한 높은 예술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보여준다. 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금속공예와 더불어 고려미술의 수준 높은 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특별전 ‘세밀가귀(細密可貴) : 한국미술의 품격전’(2015.7.2-9.13)이 웅변하듯, 화려하고 세밀하며 장엄한 미감이 빚은 높은 위상을 대변한다. 고려는 자타가 공인하듯 청자·대장경·불화의 나라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원복 문화재위원, 전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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