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하다 지쳐 쓰러질 소비자를 위해...핀테크 도입 전 '3가지 과제' (1)

금융기관의 선두주자인 은행의 효시는 각지의 서로 다른 형태의 금화와 은화를 고객의 필요에 따라 각양각색의 화폐로 환전해 주는 일에서 시작되어, 보관과 운반이 불편한 실물 화폐를 대신하여 예탁증서를 발급하게 되었고, 예탁증서만으로 거래가 가능하게 되자 결국 은행은 실물화폐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줘 이자를 받기 시작하였다. 은행은 고객이 언제 찾을지 모르기에 일정수준의 실물화폐는 은행 금고에 보관해 놓아야 했으며, 이것이 요즘 은행에 지급준비금 형태가 되었다. 사실 실제 금고에 보관중인 돈보다 더 많은 금액의 대출이 이뤄지고 있는 구조는 은행의 신용과 거래 상대방의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거래구조로, 최근 그리스 사태만 보더라도 은행 또는 금융구조의 신뢰가 떨어질 경우 바로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은행은 파산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금융은 지극히 예금하는 사람과 은행, 또 돈을 빌리는 사람과의 신뢰가 보장된다는 가정아래 다양한 금융상품이 거래되는 구조이며, 특히 전술한 금융기관의 신용과 이를 신뢰하는 거래 당사자의 믿음이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과거에는 일일이 고객과 은행 종사자들간의 신뢰를 쌓아 갈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금융거래가 대부분이었다. 돈을 맡기고 다시 찾고, 돈이 부족할 경우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이자를 내며 상환하고, 이를 관리 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본적인 거래 구조에 파생상품 등 복잡다변해지고 있으며 이를 떠 받들고 있는 것은 ICT기술이라 하겠다. 금융은 ICT를 통해 발생된 숫자와 지수를 신뢰하게 되었고 이를 거래하게 되었고, 더 이상 금과 은을 금고에 보관하거나 내어 주지 않아도 되면서 지금의 대형 글로벌 금융기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ICT는 금융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고 있으며,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합성어로 세계적으로 핀테크라는 이름으로 10대 인터넷 산업 이슈로 조망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과 더불어 급성장할 전망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산업에 있어 핀테크는 한국의 앞선 ICT기술력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는 것이 현실이며, 최근에 삼성페이나 카카오페이 등이 결제분야에 서비스를 내놓지 않았다면, 사실 글로벌 핀테크 시장에 견줄 만한 비즈니스가 전무했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금융실명제로 인한 비대면 금융거래의 한계와 공인인증서 등 각종 보안시스템 규정으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금융산업에 적용하는 것에 제한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글로벌 금융산업에 핀테크 플레이어가 진입하면서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반면에 기존 금융기관은 고객 중심이 아닌 대주주의 이익 실현을 위한 단기적 실적기반 비즈니스 모델로 주요고객은 서민이나 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위주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속되면서 고객의 신뢰가 상당부분 저하되었고 쉽게 회복되고 있지 않다. 이에 핀테크 플레이어들은 고객의 요구를 면밀히 분석하여 이에 부합되는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고, 은행과의 거래를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중단하고 있는 언뱅크드(unbanked)와 언더뱅크드(underbanked) 집단을 위한 서비스 개발에 주력하는 등, 고객에게 신뢰와 선택의 다양성, 이에 디지털 기술을 더하여 기존 금융기관에 위협과 경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기존 금융기관은 페이팔, 애플페이, 알리페이 등의 핀테크에 지급결제, 이체 등의 뱅킹분야에 많은 시장을 내어 주어야 했으며, 앞으로도 여신, 자산관리, 트레이딩 중개, 금융상품 판매 등 금융기관 고유의 시장 도메인에서 시장지배자 지위를 이어갈 수 있을지 그 누구도 확신을 할 수 없다.

해외의 핀테크 선도 금융기관은 이러한 금융환경을 신속히 간파하여, 크게 두 가지 방향의 금융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첫째는 스페인의 BBVA가 세이브업(Saveup), 프리머니(FreeMoney), 섬업(Sumup) 등과 같이 핀테크 기술기업에 지분투자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새로운 사업의 공유 및 비즈니스의 창출이며, 둘째는 영국의 Barclays가 핑잇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국내외 송금과 대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같이 금융기관 자체로 기존의 금융시스템과는 별도로 핀테크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서비스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 핀테크 선점은행은 이미 대출 심사 시 기존의 신용평가 자료에 더하여 SNS를 통한 평가방법을 도입하였고, 소액자금을 원하는 개인이나 소상공인에게 빠른 대출을 하거나, 보다 자유롭고 간편한 송금을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실시간 처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의 금융상품 이용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실로 핀테크 분야는 큼지막한 단위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대출, 지급결제, 개인자산관리, 개인투자, 송금, 주식발행 및 자본조달, 기관투자, 소비자뱅킹, 뱅킹인프라, 시장조사 및 데이터서비스 등 10여개의 분야로 확대되어 있고, 이미 지급결제와 대출, 송금 및 개인자산관리 분야에서는 다양한 서비스가 많은 사용자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이제 결제분야에서 첫걸음을 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금융기관들도 핀테크 전문 부서, 센터, 연구소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꾸려, 전사적으로 다각적인 대응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현재는 실제 사용자인 고객이 피부에 느낄 수 있는 서비스로의 연결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 금융기관이 핀테크를 도입함에 있어 가장 큰 선행과제는 고객의 요구와 현재의 불편함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하여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언제 어디서든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대화창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며, 둘째는 고객의 생각과 불편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노력으로 SNS 등에서 찾아보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끝으로 다양한 고객의 요구와 거래정보, 리스크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 확보를 위한 빅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기술의 도입이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은 고객의 불편과 요구를 이해하게 되고, 고객의 입장에서 편리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운영중인 서비스에 대한 끊임없는 피드백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토끼굴에 들어가 기묘하고 의인화된 생명체들이 사는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ICT 기술 강국인 한국의 금융기관은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몸집을 줄여야 하는 앨리스와 같다. 더 이상 ICT 강국이라는 타이틀, 기존 인터넷뱅킹이나 HTS 등의 화려한 금융시스템을 뽐내며 핀테크 세상에 진입하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핀테크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잡지 못할 것이다. 결국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겪으며, 다시 거인이 되어 위력을 뽐낼 때까지 한국 금융기관은 기술강국의 견장은 잠시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앨리스가 이 모든 것이 꿈이 되어버리는 결말처럼, 한 순간에 꿈이 되어 그간의 핀테크에 대한 투자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금융기관, 기술벤처기업, 정부기관 등 관련자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협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단돈 몇 천원의 결제를 위해 ID와 비밀번호 등록, 공인인증서, SMS 인증 등 수많은 과정에 지쳐 포기하고 마는 한국의 금융 소비자들의 한숨이 들리는 듯 하다.

이정학 ㈜씨이랩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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