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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내가 종종 이용하던 통일호 열차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보다 느리고 좁았다. 그러나 나는 나와 함께 열차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봤을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운 고향으로 향하던 이들,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온 시민들. 그들이 한반도 통일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고, 통일이 되고 평화가 찾아오는 날 바로 이들이 가장 큰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시장에 당선된 직후였다. 평화와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게 일부에서는 민생도 어려운데 다른 것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연평도 사건과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가 더없이 악화되자 그동안 화해협력정책을 비판해오던 이들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내 전망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평화의 중요성이 증명된 좋은 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나는 외교통상위원회에서 비밀 기간이 해제된 미국의 비공개 문서를 접한 적이 있다. 북한의 정권이 붕괴되거나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동독과 서독의 흡수통일이 아닌 수천만의 인명을 살상하는 전면전의 양태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다.

최근 남북 간의 위기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은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적극 주장한다. 강도 높은 대북응징 발언,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하기 때문에 군사적 보복공격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전쟁의 위험성은 물론 대한민국의 경제, 현 정부의 운명을 어둡게 할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통일부 등 정부 부처와 나의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두 차례 박근혜 대통령께 평화통일 해법과 판문점 추가접촉 합의문의 기본 방향에 대해 긴급히 제언했다. 결과적으로 극적으로 타결된 남북 합의 내용의 방향은 북한의 대남도발 사과와 확성기 방송 중단,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와 이산가족 상봉 등 나의 여섯 가지 제언과 일치했다.

전쟁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은 대다수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좋은 전쟁은 없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적과의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가장 소중한 가치다.

고양시는 그동안 평화통일특별시를 표방해 왔다. 100만 고양시가 한반도 평화통일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길 원하기도 하지만, 평화를 꿈꾸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연대는 무엇보다 강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향후 고양시는 평화인권도시 및 남북교류협력 기반 구축이라는 미래상을 토대로 평화인권센터를 설립해 평화통일의 내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탄현동과 금정굴 일원, 그리고 JDS 지구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이와 함께 평화통일특별시라는 고양시의 청사진에는 평화통일 연구기관 유치에 관한 계획과 호수공원과 연계한 인권평화 축제 및 대회 개최가 포함되어 있다. JDS 지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남북교류 협력을 지원하고, 이를 위해 통일물류기능 수행을 위한 접경지역 예비기지를 구축할 예정이라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GTX, 대곡-소사선 등 광역교통 인프라도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 4일 고양시 인구 100만 진입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5대 비전 중 하나로 ‘통일한국을 선도하는 평화통일특별시’를 들었다. 그간 나와 고양시는 2020 평화통일특별시라는 큰 그림 아래 평화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시민참여 모델을 탄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 왔다.

행신역에서 부산역을 두 시간여 만에 갈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부산보다 더 가까운 개성이나 평양으로 갈 수 없다는 아득함을 생각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평화통일 운동을 추진해야 하고,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한반도의 평화와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평화는, 통일호처럼 조금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모두 함께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최성 고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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