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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영 수원시장(염태영)의 한 수 한 수가 치명적이다. 기세는 패왕(覇王), 완력은 국수(國手)급이다. 분가(分家)한 동생의 대마(大馬)를 파호(破戶)했다. 대궐 같던 화성 광역화장장은 졸지에 초가삼간이 됐다. 동거(同居)하는 형의 미생마(未生馬)에 치중했다. 몇 집 날 것 같았던 경기도청 광교신청사는 두 집 내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염태영의 수는 ‘너 죽고 나만 살자’는 류(流)의 독수(毒手)다.


염태영이 화장장 판에서 둔 무리수는 복기(復棋)해 볼 가치도 없다. 무슨 생각으로 남의 땅에 들어서는 화장장에 딴죽을 거는지 납득이 안된다. 채인석 화성시장에게 ‘수원비행장 화성 이전 결사항전’이라는 최강수를 당했다. 염태영의 한 수는 비행장 고립을 자초한 이적수(利敵手)가 될 확률만 키웠다. 눈 앞의 이득을 챙기려다 대세(大勢)를 그르친 셈이다.

광교신청사 판은 화장장 판의 답습이다. 염태영은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도의 광교신청사 건립 방법에 제동을 걸었다.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상대를 단수(單手)로 몰았다. 그리고 타협해보자며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급소를 노린 염태영의 수순(手順)은 교묘했다. 조직을 앞세워 판을 흔들었다. 수원시는 회견 일주일 전에 보도자료 형식을 빌어 ‘사전 검증이 안된 구상’ 운운하며 ‘패(覇)싸움’을 시작했다. ‘복합개발=난개발’로 엮었다. 빤한 꼼수였지만, 먹혀들었다. 경기+수원(용인)협의체가 만들어졌다. 얼핏보면 이기면 대박, 져도 본전인 ‘꽃놀이패’로 착각하기 싶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겨야 본전, 지면 쪽박인 ‘천지대패(天地大覇)’로 보인다. ‘패’는 요물이다. 형세 판단을 못하는 하수는 이길 수 없는 억지 패를 만들어서 판을 망친다.

광교신도시라는 기보(棋譜)를 살펴보자. 염태영의 자충수(自充手)가 선명해진다. 난장판이던 원천유원지가 호수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신분당선을 광교까지 끌고왔다. 창룡문 지하차도도 놨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던 천지개벽이 10년 만에 일어났다. 수원시는 고작 시유지 몇 필지 내놓았을 뿐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은 모두 광교 입주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시쳇말로 ‘손도 안대고 코 푼’ 격이다.

염태영은 광교 난개발을 걱정할 자격이 없다. 이마트 때문에 동쪽 관문이 막혔다. 땅은 경기도시공사가 팔았지만, 허가는 수원시가 내줬다. 도심 한복판에 캠핑장을 만들었다. 아이스링크도 포기하지 않았다. 교통지옥을 만든 동업자가 ‘삶의 질’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자기부정이다. 주상복합건물을 광교신청사 터에 지으면 ‘난개발’이고, 컨벤션센터 터에 지으면 ‘순개발’인가? 논리가 해괴하다. 컨벤션센터 개발이익금을 경기도와 용인시에 나눠줄 것인가? 로맨스와 불륜의 차이는 이런 뻔뻔함에서 비롯된다.

내가 남경필 경기지사라면 만패불청(萬覇不聽)이다. 광교신청사를 안짓는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 약속을 못 지킨 손실이 ‘1’이라면, 포기해서 얻을 이득은 ‘30’이다. 청사 건립비용(3천630억원)은 15만 경기 보훈가족에게 월 5만원씩 4년 6개월간 수당을 줄 수 있는 혈세(血稅)다. 경기도는 보훈가족수당을 못주는 몇 안되는 시·도중 하나다. 광교신청사 복합개발 이익금은 도청사를 짓는데 써야하는 광교 주민들의 피 같은 돈이다. 남 지사가 채 시장식으로 응수해버리면 염태영의 한 수는 영원한 패착이 된다.

굳이 비교하면, 염태영은 이창호 국수과다. 왠만해선 기리(棋理)를 거스리지 않는다. 뚜벅뚜벅 페이스를 잃지 않는 냉정심이 지금의 ‘수원시장 염태영’을 만들었다. 늦지 않았다. 수읽기에 착오가 있었다면 물려야 한다. 착각한 것인지, 유혹에 빠진 것인지 다시 판을 들여다봐야 한다. 훈수(訓手)가 문제라면 읍참마속이라도 해야 한다. 한 배에서 나온 동생과 동네 형에 대한 예의다. 염태영의 다음 수(手)가 안보인다.

한동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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