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지 않아도 재미만 있다면 OK...하고 싶은 일만해도 매출 큰 차이 없어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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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니던 회사를 ‘욱’하는 마음에 그만둔 그였다. 그 순간 나름대로 큰 문제없이 잘 살아오던 그의 삶에도 큰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패배의식 속에 사로잡힌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결국 그는 자신에게 ‘잘 맞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일러스트레이터 밥장(Bob Jang).

그가 선택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삶은 마치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잘 어울렸다.

끊임없는 도전과 선택, 그리고 결정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가 상처럼 얻게 된 삶이기도 하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충분히 재밌고, 의미있게 살수 있다는 그는 “이런 삶도 있다”고 말한다.

#나는 ‘범생이’였다.

“사고치는거 두려워하고, 주어진 일은 무리없이 하고. 한마디로 완전 범생이었죠.”

밥장의 어린시절은 ‘모범’ 그 자체였다.

사고를 친 적도 없고, 말썽을 부린 적도 없었다. 부모님께서도 그런 그를 믿고 진로나 진학에 대한 압박을 준 적이 없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대학을 졸업할 때도 막연한 느낌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는 무난하게 경제학과에 진학했고, 큰 고민 없이 취업을 했다. 지금처럼 ‘청년실업’, ‘청년백수’와 같은 말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우연히 ‘어떤 곳인지 면접이나 한번 볼까’하고 찾은 대기업 입사 설명회에서 그는 남부럽지 않은 첫 직장을 갖게 됐다.

90년대 후반, 기업들이 속속 방송에 진출하던 시기로 뉴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다. 밥장은 대기업 내 여러 부서에서 일을 하며 사회경험을 쌓았다. 회사생활도 재밌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를 하며 예산과 일정을 짜고, 계약서를 쓰고, 품질을 관리를 하며 여러 분야의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남이 보기에 괜찮은 답이 나에게도 괜찮은 답’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는 대기업에서 나와 이리저리 회사를 옮기다 30대 초반에 한 벤처회사의 ‘이사’가 됐다. 그러다보니 모든 직장인이 겪는 수많은 일을 압축적으로 겪게 된 그였다.

불현듯 자신의 현실에 ‘울컥’한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왔고, 또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과 맞닥뜨리게 됐다.

“진로고민이요? 시기가 올 때마다 많이 했겠죠. 그러나 진짜 진로고민은 오히려 30대에 제일 많이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교육과정도 모두 마쳤고,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해봤으니까요. 어릴 때야 잘못된 길을 가도 새로 시작할 때 티도 안나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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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고생’하던 밥장,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다

“나는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적절한 평가를 못받는 느낌이었어요. 일과 상관없는 정치적인 부분에 도통 익숙해지지도 않았고요. 사람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다 성과도 내야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욱하는 마음에 회사를 나왔죠. 그리고 개고생했습니다.”

사무실 하나 차리면 월세와 인건비 정도는 뽑겠지란 생각으로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기업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 내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눈이 높아져요. 사실은 그 회사와 조직이 갖고 있는 능력이고, 그가 가진 직급으로 한 일인데 말이죠. 막상 회사를 나와보니 남의 돈 벌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때 깨달은 게 퇴사할 때 나의 능력이 100이라면, 실제 나의 능력은 20~30이다는 거였어요.”

사업을 시작했지만 평생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에 대한 공부도 하고, 즐겨야 하는데 억지로 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렇게 가다간 몇 년 못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 지 한참을 고민했다.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결혼생활 6년 만에 이혼도 하게 됐고, 내세울 것 없는 모자란 사람이 된 느낌이었죠. 나름대로 모범적으로 살아온 인생인데 요 모양 요 꼴이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미치겠더라구요. 그때 그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림은 그와 잘 맞았다. 혼자 아이디어를 내고, 표현하는 것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재밌으니까 무작정 열심히 그렸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주변에 알리고, 출판사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렇게 작은 일부터 맡아서 하다보니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2007년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전업했다.

“저에게 그림은 목표가 아니고 수단이에요. ‘그림을 통해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재밌는 일만 하고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그 전에는 돈 받고 그림 그리는 일을 했다면, 지금은 재밌는 일만 선택해서 하고 있어요. 돈이 많지 않아도 재미만 있으면 일을 했는데, 의외로 매출에 큰 차이가 없더라구요. 낭창낭창하게 살아도 괜찮겠다고 느꼈어요.”

남의 시선에 나를 끼워 맞췄던 범생이는 30대 초반까지 진짜 나의 일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재밌는 일을 찾아다닌다.

나눔도 같은 맥락이다. 2007년부터 사랑의 연탄나르기 운동본부에서 처음 시작하게 된 재능나눔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눔은 제가 선택하는 거예요. 제가 스스로 돈과 무관하게 재능을 나누는 게 괜히 멋있더라구요. 보람있는 곳에 그림이 쓰인다는 게 만족감을 높여줬어요.”

작은도서관 벽화도 그리고 어린이재단 일도 도우며 재능나눔을 한지도 수 년. ‘그때 재능나눔을 안했다면 지금과 같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늘 대답은 ‘아니오’였다. 나누는 일은 그에게 자존감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올려주는 즐겁고 보람된 일이다.

밥장은 올해 말까지 기록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또 완주 명예국민으로서 지역의 유휴공간들을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그 공간에서 그림도 보고, 교육도 하고, 프로젝트도 진행하며 군민들과 즐길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다.

그가 서울시 은평구에 작업실 및 활동공간으로 만든 ‘믿는구석’은 그 프로젝트의 샘플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믿는구석은 필요하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책도 읽는 나눔(share) 공간으로 입소문 나있다.

하루하루 바쁘지만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밥장. 그런 그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선택을 주저하면 안된다. 그러기엔 우리의 인생이 짧다”고 조언한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가지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 가집니다.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것을 정해놓고 하나씩 이뤄보세요. 저 같은 경우엔 8년 전에 정말 편하고 좋은 사무용 의자를 샀어요. 이걸 가지면 제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았거든요.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해 나가다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구민주기자/kmj@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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