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부실채권 헐값 매입 빚 탕감...서민 신용 회복시켜 경제활동 의지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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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빌리은행 출범식에 참석한 이재명 성남시장
지난 8월 27일,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은행이 출범했다.

이 은행은 일반 시중은행들처럼 예금업무나 대출업무를 하지 않는다. 대신, 장기연체된 부실채권을 사들여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바로 ‘주빌리 은행’이다.

#‘주빌리 은행’의 탄생

주빌리 은행은 2012년 미국에서 벌어진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롤링 주빌리’는 일정기간마다 죄나 부채를 탕감해주는 기독교의 전통인 ‘희년’에서 유래된 말로 장기 연체중인 채무자들의 부실채권을 금융회사로부터 헐값에 매입해 부채를 탕감해주는 운동을 말한다.

금융기관들은 돈을 빌리고 나서 3개월 이상 연체되면 그 채권을 손실 처리한 뒤 대부업체에 헐값에 팔아넘긴다.

그때 채권은 원금의 1~10% 수준의 헐값에 거래된다. 심지어 1%도 안 되게 팔리는 부실채권도 많은 실정이다.

부실채권을 이렇게 헐값에 사들인 전문 채권추심업체들이 과도한 방법을 동원해 혹독하게 추심에 나서면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는 채무자대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주빌리 은행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싸게 구입해 채무자에게 원금의 7%만 갚으면 빚을 탕감해준다.

신용이 불량한 이들을 정상적인 신용상태로 회복시켜 경제활동 의지를 갖게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주빌리 은행은 출범 이후 한 대부업체로부터 37억원어치 부실채권을 기부받아 1천938명의 빚을 없앴다.

올해 안에 새마을금고의 부실채권 100억원어치를 매입할 계획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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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빌리은행 출범식에서 참가자들이 장기부실채권을 불태우고 있다.
#성남판 ‘롤링 주빌리’, 빚 탕감 프로젝트

주빌리 은행의 탄생에는 공동은행장을 맡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후원이 크게 작용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해 9월부터 ‘성남형 빚탕감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장기악성채무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구제에 앞장 서 왔다.

빚탕감 프로젝트는 최근까지 약 33억700만원의 부실 채권을 태워 없앰으로써 539명을 구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시 산하기관, 기업체뿐만 아니라 불교계와 기독교계 등 종교계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프로축구 성남FC는 아예 메인 유니폼 로고로 ‘롤링 주빌리’를 채택했다. 국내에서 공익캠페인을 메인 유니폼 로고로 사용하는 것은 성남이 처음이다.

지난 7월에는 성남시기독교연합회에 속한 교회 30여곳에서 모은 헌금 1억여원을 기부했다. 이 돈이 주빌리 은행을 설립하는 밑거름이 됐다.

일각에서는 성남시의 빚 탕감 프로젝트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채무자가 갚아야 할 빚을 시가 나서서 탕감해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은 “일부에서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지만 10년이 되도록 그 지독한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 못 갚은 것은 갚을 형편이 안 되는 것”이라며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어 정상적 삶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도 공동체의 몫이다”고 반박했다.

#전문가 도움으로 체계적인 빚 탕감

성남시의 빚 탕감 프로젝트는 악성채권 소각뿐 만 아니라 채무자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채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그 특별함이 있다.

성남시는 지난해 11월 시청 종합민원실에 재무상담실을 설치한데 이어 올해 3월6일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금융복지상담센터’를 개소했다.

시청사 9층에 위치한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재무상담사, 사회복지사 등 3명의 전문 인력이 상주해 신용회복위원회,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관련 기관과 연계, 금융소외계층과 과다 채무자에게 금융구제방안과 법적 절차를 안내한다.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채무불이행자의 법적 권리 보장과 합리적 채무 조정·상환 지원을 위해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금융·법률 지식이 없어 불법 추심을 당해도 무방비 상태에 놓인 채무자를 보호하고, 채권자에게도 채권 회수에 합리적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변호사가 채무자의 대리인으로 나서는 것을 말한다. 채무자가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면 지난해 7월 개정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채권 추심사가 채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이 금지된다. 대리인을 선임했음에도 채무자나 그 가족에게 직접 연락해 불법으로 빚 독촉을 하면 최대 2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빚 상환은 법적 대리인을 통해서만 교섭할 수 있다. 대리인은 채무자가 진 빚에 대해 법적으로 면책된 채권이나 시효가 지난 채권이 있는 지 살펴보고, 채권 추심사와 협의해 채무를 조정한다.

채무자는 우편, 전화, 문자, 가정·자녀 학교 방문 등 채권 추심사의 과도한 빚 독촉에서 벗어나 개인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되고 조정된 채무액을 상환해 빚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국가가 빚 탕감 나서야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올 상반기 말 현재 1천130조5천억원을 넘어섰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요소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장기악성채권뿐만 아니라 가계부채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재명 시장은 “부실해진 재벌 살린다고 국민세금으로 170조원 가까운 국가예산을 공적자금으로 썼지만 서민을 살리기 위해선 얼마나 투입했냐”며 “주빌리 은행이 민간모금으로 빚 탕감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정책과 예산으로 서민 빚을 탕감해주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성기자/sd1919@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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