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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시나브로 깊어가고 어느새 추석이 또다시 지나갔다. 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한가득 정 담긴 상 앞에 모여 오랜만에 가족과 정감을 나누었으리라. 게다가 함께 자란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 귀향길은 늘 설렘의 시간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학교에 들어가 친구를 사귀면서 비밀 얘기도 곧잘 나누고 부모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이는 부모도 다 경험한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직장과 가족이 생기고 일로서 맺어지는 친구가 생기지만 그 의미는 어릴 적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족을 위해 일에 매달리어 살다보면 삶의 우선순위에서 어릴 적 친구는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친구의 존재는 점점 나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러나 누군가 친구는 선인장과 같다고 했다. 친구는 선인장에 띄엄띄엄 물을 주듯 드문드문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즐겁다. 친구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회자되어 많은 이들이 삶의 모토로 삼고 있는 ‘카르페 디엠’ 이라는 것도 실상 뿌리는 과거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과거와 연결된 친구란 실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의가 두터운 친구가 곁에 있으면 세상을 한결 호기롭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 친구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구야 오랜만이다. 오늘따라 문득 네가 많이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데는 큰 망설임이 필요치 않고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연암 박지원은 ‘방경각외전’을 통해 벗과의 우정을 예찬하고 또 다른 글에서 “벗이란 제2의 나”라고도 했다. 이렇듯 소위 ‘연암그룹’ 친구들의 우정은 유별나다.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정철조, 거기다 무인 백동수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친구가 되는 그들 붕우(朋友)의 믿음은 새로운 지식인의 집합체를 이루어 이용후생을 실천하고 실사구시를 추구하였다. 또한 사실적으로 시와 산문을 짓고 풍자와 익살로 서민적인 정취를 표현하여 한문학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여기 연암의 절친 이덕무가 20대 초반에 쓴 ‘선귤당농소-(선귤당에서 크게 웃는다)’의 ‘지기(知己)’ 편에 실려 있는 글을 소개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은 이 글을 “동서고금을 관통하여 친구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아포리즘”이라 평했다. 공감하며, 나는 오늘도 그런 ‘지기지우’를 그린다.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을 물들이리라. 열흘에 한 가지 빛깔을 이룬다면, 오십일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룰 수 있으리. 따뜻한 봄볕에 이를 쬐어 말린 다음, 여린 아내에게 부탁하여 백 번 정련한 금침으로 내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그런 후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오래된 옥으로 축을 만들어 아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흐르는 강물, 그 사이에다 펼쳐 놓고 말없이 마주 보며있다가, 뉘엿뉘엿 해질녘에 품에 안고 돌아오리라.’

박정하 서울싱어즈소사이어티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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