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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양대 축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벌인 우주경쟁은 1957년 10월4일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면서 시작됐다.

카자흐스탄의 기지에서 발사된 스푸트니크 1호가 무사히 지구 궤도에 진입하자 전 세계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미국은 경악했다. 지름 58cm, 무게 83.6kg의 소형 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가 미국에 던진 충격은 실로 컸다. 이때 미국 등 서방 진영이 받은 충격을 가리켜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이란 말이 만들어졌을 정도. 스푸트니크 충격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각인돼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1년 초 국정연설에서 교육과 혁신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의 '스푸트니크 순간'에 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스푸트니크 1호는 96분에 한 번 지구를 돌며 무선 신호를 보냈다. 미국 상공에도 하루 몇 차례 지나갔다. 스푸트니크 1호는 3개월 뒤인 1958년 1월 대기권에 재진입해 소멸됐다.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적인 발사로 우주 시대를 연 소련은 유인우주선(1961년 4월), 우주 유영(1965년 8월) 등 잇따라 '세계 최초' 기록을 세우며 우주 경쟁에서 미국을 한 발짝 앞서 나갔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미국은 서둘러 1958년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한 데 이어 1961년 '아폴로 계획'을 출범시켰다. 스푸트니크 1호에 대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중에 떠있는 작은 공'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실제로는 일주일 만에 과학자들과 비밀 회동을 하고 '우주경쟁에서 소련을 이겨야 한다'고 결의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열등감은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1930∼2012)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뒤에야 비로소 극복됐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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