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만든 행궁 내 유여택에 아버지 죽음의 뒤주 설치...학계, 역사적 맥락 부적합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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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전 수원 화성행궁 유여택 내에 설치된 뒤주 상설체험장에서 관람객들이 뒤주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적혀있는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이준석기자

최근 영화 ‘사도’의 개봉으로 사도세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수원문화재단이 사도세자가 갇혀 숨진 뒤주를 아들 정조대왕이 만든 화성행궁 내에 설치해 관광객 상설체험장으로 운영, 논란을 빚고 있다.

문화재단은 지난 2006년부터 화성행궁 내 유여택에 가로 1m, 세로 0.7m, 높이 1.1m 크기의 뒤주 4개를 설치해놓고 관광객들이 뒤주 안에 직접 들어가 이를 체험해볼 수 있는 상설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유여택은 정조가 즉위 당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러 갔을 때 머물며 신하들로부터 각종 행사에 대한 보고를 받았던 건물이다.

문화재단은 관람객들이 쉽게 뒤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나무로 제작된 발판을 만들어 뒤주 앞에 비치해놨으며, 만 3~8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주로 이를 이용하고 있다.

문화재단은 정조대왕의 아버지가 갇혀 숨진 뒤주를 상설체험장으로 활용하는 데에 대해 교육적 차원에서 실시했다는 입장이다.

문화재단 관계자는 “정조대왕의 아픔을 다시 되새겨보자는 취지로 화성행궁 내 뒤주를 설치했다”며 “정조대왕에 대한 효심을 왜곡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재단은 이같은 의도와 달리 홈페이지를 통해 뒤주 상설체험장을 소개하면서 “(뒤주체험을 통해)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대왕의 효심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라는 황당한 설명을 올려놨다.

사도세자는 1762년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숨졌으며, 이러한 내용은 지난달 16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에서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등극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에서 뒤주에서 죽어간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채춤을 추는 장면을 통해 안타깝게 묘사된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들과 역사학자들은 정조가 만든 화성(華成) 안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연관된 뒤주를 설치한 게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관광객 이문경(45·안양시)씨는 “정조대왕이 만든 화성행궁 내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간 뒤주를 전시해놓고 이를 상설체험장으로 활용한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며 “정조가 알면 무덤 속에서 깨어나 까무러칠 일”이라고 말했다.

경기대학교 사학과 조병로 교수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가슴아픈 사연이 담긴 뒤주를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이용하는 일은 아이들에게도 교육상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조대왕의 효를 알리고 싶다면 뒤주 이외에 다양한 컨텐츠를 복합적으로 개발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종대·이준석기자/pjd30@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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