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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다윈은 생물 진화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19세기 영국 자연 과학사는 물론 세계 자연과학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개 역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 면면의 과정이 그렇듯이 그의 아버지 로버트 다윈 역시 아들인 찰스다윈이 의사가 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엉뚱하게 다윈은 처음에 신학에 관심을 둬 케임브리지 신학부에 입학하고 다른 한편으로 곤충채집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갈라파고스를 탐험하는 중 영감을 얻어 종(種)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가 저술한 ‘종의 기원’은 이렇게 그 당시 지배적이던 창조설을 뒤집어 놓았다. 기독교 사회가 뒤집어진 계기다.

당연히 기독교에 기반을 둔 영국은 물론 유럽사회가 반감을 갖고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온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그리고 인류학과 심지어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생존경쟁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많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중요한 얘기는 진화론의 중심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 이란 것이다. 정리하자면 기존의 이론적인 개념에서 진보해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차분히 정리해 놓은 평범하면서도 한 차원 앞선 이론이었다.

중국이 엊그제 끝난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앞으로 경제성장률 목표를 내려잡았다. 그리고 지난 35년간 고수한 한 자녀 정책을 없애고 결국 두 자녀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데는 중국의 변화에 있다. 거대한 몸집을 지니면서 언제 끝날 줄 모르는 드라이브 경제정책에서 일단 한 발 물러서면서다. 어쩔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른 좌절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다시 경제와 사회 개혁을 한꺼번에 하면서 예전의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당장 중국이 수출 성장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다. 게다가 일할 수 있는 노동력도 4년 전 부터 내리꽂고 있다. 통계에 지난해만 해도 350만 명이 줄었단다. 뭔가 차별이 필요한 중국의 절박함이 선택한 변화다.

우리가 교과서 문제에 정치부터 경제에 이르기까지 정신없고 국방 역시 엄청난 예산을 떼이거나 누군가 암암리에 해 먹고 있을 무렵 이렇게 중국은 변하고 있었다. 물론 다윈 이후 정통성을 지니며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자존감을 지켜오던 나라들, 즉 영국 독일 프랑스도 도도했던 체면을 뒤로 감춘 채 중국의 실세가 방문하자 여왕등 로얄패밀리까지 전면에 내 세우고 있다.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데 왕실이 뭔 대수냐는 얘기들이 변명으로 그 구멍을 메우고 있다. 이 모두가 어려운 경제 안에서 보이지 않는 혁명이 자국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탓이다. 생각해 볼 때 대개의 민란이나 혁명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발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지금껏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면서 그렇게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며 민주를 부르짖는 가운데도 또 한편으로 독재자가 판을 쳐도 경제만 잘 돌아가면 그렇게 독재는 어렵지 않게 오래 가는 모습들을 국민 모두가 똑똑히 지켜봐 오지 않았는가. 저절로 변화해 온 탓이 크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변화를 거절하고 있다. 어쩌면 거절이 아니고 거부하고 있다. 시대에 맞춰 제대로 변해야 함에도 껍데기는 더욱 단단해져 가고 있다. 여전한 말장난이나 고성과 막말이나 간단한 자기들간의 문제들로 시간만 때운다. 다른 나라의 그것처럼 명연설이나 상대 정당을 단 한번 에 제압하는 한마디 문장도 못 외운다.

아주 정치의 변화가 없는게 아니다. 그 변화라고 우기는 게 고작 의석 수 늘리기다. 늘 의원의 숫자가 아니라 질이 문제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인구대비 의원 수만 노래한다. 각종 통계가 국민들의 변화요구를 대신하려 하지만 턱도 없는 얘기다. 정치가 이러다 보니 경제도 배우고 있다. 선진국보다 임금이 높으면서 노동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은 귀족 노동자로 채우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중국 내 판매 실적이 엉망으로 기록됐다. 진출 6년 만에 중국 업체에 뒤진 일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 샤오미란 기업은 지금 우리가 꾸물거리는 사이 한국 안방 점령을 초읽기에 들어갔다. 우리 업체에서 분명 다를 것이라고 큰 소리 치지만 비슷한 품질의 전자제품들이 반도 안 되는 가격에 도배를 해댄다.

외삼촌 떡도 싸야 한다는데 그 외삼촌 보다 더 먼 이웃의 손짓에 텔레비전부터 휴대전화는 물론 간단한 밴드워치에 이르기까지 중국기업에 내 줘야 할 판이다. 비단 베스트셀러 상품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우리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발을 빼야 할 상황이다. 종내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가 한국 기업이 중국과 더불어 성장하기를 바란다며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갑이 을이 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는다.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다는 얘기 역시 더 없이 간단하다. 변화해야 산다. 개인이 사회가 국가와 기업 그리고 정치가 가만있으면 그냥 주저앉는다는 비장함으로 변화해야 살 수 있는 환경에 우리는 서 있다.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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