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대한 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강력해진 박근혜 정권의 피로감에서 온 일인지 더 한층 강경해 진 정부의 정책 끝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이른 바 '수저계급론'이다. 뒤늦게 만들어진 이런 수저계급론은 가난을 합법적인 권력이 지배하는데 달려있다고 해석된다. 얼마 전만 해도 토마 피케티와 앵거스 디턴 같은 경제학자들은 가난과 부의 불평등에 관한 원인과 결과를 경제학적으로 접근 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구조적이유가 정치권력 구조에 있다고 조명한다.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 역시 저서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에서 가난에 무관심한 사람들, 즉 적지 않은 정치인들에게 이런 합법적인 권력이 제도라는 미명아래 주어진 탓이 크다고 말한다. 아마도 우리가 예전부터 들어온 "가난은 국가도 구제 못 한다" 는 얘기가 이 책의 내용과 맞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태어날 때부터 비싼 금수저를 차고 나오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못 본체 하거나 없다고 말하는 게 도리이고 그렇게 말해야 사회적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불평등을 피하기 어렵지만 단지 민주주의 기본인 평등을 고려한 모두의 배려 덕분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이러한 부의 불평등에 대해 정책에 따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 실천에 있을 것이다. 물론 생각하기 따라 흙수저를 차고 태어난 사람들이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살고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에 기초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로이스는 불평등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갖다 바쳤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각해 볼 때 어느 사회든지 대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없는 사람에게 무관심하다.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같은 얘기로 가끔은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말 역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하고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정도에 그친다. 강력한 의무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와 이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얘기는 늘 있어 왔다. 그러니까 부와 권력, 명성이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함에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상위 1%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그들은 우리도 모르는 시간에 명품만 취급하는 백화점 세일에 은밀히 초대되고 그들만의 공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부의 누림을 가져도 일반인들은 관심 가질 여력과 기회조차 없다. 

 지난 주 이러한 흙수저의 분노를 살 얘기가 터졌다. 과거 열린우리당 당의장까지 지낸 4선 국회의원인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로스쿨에 다니는 아들이 졸업 시험에 떨어지자 구제해 달라고 학교 측에 압력을 행사한 의혹이다. 개인적인 부모의 마음으로 변명을 하고 있지만 그가 평소에 외쳐댄 정의나 민주의 이미지를 대보면 이 역시 가난이 조종되고 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수많은 청년 실업자가 이 땅에 차고 넘쳐 듣기에도 민망한 신조어들이 나오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을 조롱하는 지옥의 나라 (헬조선)와 불거지고 있는 '흙수저론'이 그렇다. 비단 권력을 손에 쥔 신 의원 사례만이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아들이나 딸의 취업청탁 소식이 전해지고 아마도 이들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그 자식들은 영영 금수저를 대물림할 수 있다. 

 이렇게 국회의원 같은 권력층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 자식들을 업고 다니면 그야말로  빽 없는 부모들의 억장은 무너지기도 전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결국 이런 사례들이 부의 재분배가 필요없고 권력의 재분배를 절대 필요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은 정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정치는 작게 투표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이 그 옛날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를 외면하자니 저질스러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참여하자니 찍을 정당이나 사람이 없어도 참여해 권력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수저론 다음에 나올 얘기가 두려운 차가운 겨울시간이다.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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