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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이나 술자리에서 하는 푸념 중 흔히 듣는 얘기 하나. “세상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과 골프”. 그런데 이런 말을 만들어 낸 고 이병철 삼성 회장에게는 하나가 더 있었다. ‘미원’이 그것이다. 70년대 과거 우리의 식탁을 확 바꾸어 놓은 조미료 전쟁에서 지금의 대상기업이 만든 미원에게 뼈아픈 패배를 맛 본 덕이다. 그래서 삼성 창업자인 이 회장의 얘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까닭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경영으로서의 성공은 거뒀지만 자식농사의 어려움과 머리 식히러 나간 시원한 필드에서 조차 마음대로 공이 안 나가는 얘기를 빗댄 얘기다. 그 후 2세인 이건희 회장은 공순이, 공돌이의 삼성전자를 명실공히 세계적인 글로벌기업 삼성으로 우뚝 세웠다.

물론 그에게도 선친처럼 뼈아픈 실패는 있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는 얘기. “이 회장이 새벽이면 몰래 포르쉐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탄다.” “어제는 운전하다 옆에서 누구 차가 쌩 하고 달리는데 내차 시속이 140이었는데 벌써 안 보이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삼성 이건회 회장이 몰고 간 이름도 모를 외제차더라” 그러니까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유별난 자동차관심에 대한 표현이 말에 말이 더해 부풀려진 것. 하지만 이런 풍문과 말들은 머지않아 자동차사업으로 이어진 것을 기억한다. 알려진 대로 자동차 마니아였던 이 회장이 95년에 현대의 긴장어린 눈길 속에 삼성자동차 설립이라는 엄청난 도박을 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한 법. 많이 갖은 사람을 위해 다른 하나를 더 넣어줄 신(神)이 결코 아니었다. 여러 악재가 꼬리를 물고 화수분 같은 투자비로 지친 삼성은 몇 년 안가 프랑스 르노에 공장을 넘긴다. 지금도 삼성차에 ‘르노삼성’이라고 꼬리표를 물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갖은 사람은 어느정도의 궁금증이 풀리게 될 대목들이다. 당연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그래서 다시 생긴 얘기가 “앞으로 삼성은 ‘바퀴 달린 제품을 생산 안 한다” 였다.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은 흐르고 삼성은 반도체와 더불어 스마트폰 사업으로 주식을 천정부지로 올리는데 성공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삼성이 만든 스마트폰 로고가 선명히 전해졌고 심지어 테러에도 삼성 스마트폰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사람도 생겨났다. 이 뿐인가. 유럽 명문 구단의 축구선수들 역시 삼성이 입혀준 팀복을 입고 뛰고 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 시장이 수위에 이르자 삼성은 다시 고민을 한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라’. 지상과제 같은 얘기였지만 10년 이상 그 많은 사원들을 먹여야 할 이 주제는 도무지 찾을 수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2015년 12월 삼성자동차가 전명 철수한지 15년 만인 지난 9일 삼성의 전체 조직 개편에 커다란 뉴스가 걸렸다.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의 선포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운전을 안 하고 저절로 굴러다니는 차들이 외신을 통해 속속 보여 지고 있던 터. 삼성이 이를 허투루 봤을 리 만무다. 전자장비를 줄인 전장사업팀이 새로 만들어 졌고 이제 삼성의 운명이 달려있다. 휘발유나 경유로만 굴러다니고 그 안에 내비게이션이나 붙어있는 정도의 자동차가 이제 스마트폰이 계기판에 들어가고 음성인식까지 붙는 이유에서다.

진화된 차량의 미래를 보는 셈이다. 다시말해 이제부터 말하는 자동차 전장에서는 차 안의 모든 전기·전자·정보기술(IT) 장치를 포함한 게 된다. 스마트폰을 만들던 삼성에서 스마트카에서 차체만 빼고 다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미 찰대로 찬 전자산업의 끝에 삼성이 내린 고육책이다. 앞서 얘기한 바퀴달린 제품, 즉 자동차 완성시장을 노리는 게 아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자칫 과거 쓰라린 추억과 함께 이미 자율주행 완성차를 만들어 놓고 있는 애플과 구글에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앞으로 자동차의 외관상 디자인 역시 한계에 이르면서 내연기관의 종식과 함께 전기차의 등장, 그 경계 또한 없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작에 이 분야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LG 역시 그룹 차원에서 자동차전장은 물론 자동차 부품 사업에도 공을 들이는 이유다. 삼성의 먹거리가 곧 한국경제의 먹거리로 인식될 무렵 나온 삼성의 전장사업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삼성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먹거리 싸움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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