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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시작된 탈규제와 시장경쟁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물결’은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를 견고하게 구축해 놓았다. 기업의 시장 경쟁력은 곧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는 인식이 지배하게 되면서 ‘규모의 경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소수의 취향이나 선택’을 강변하는 것은 시대착오 혹은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래도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니 무상 복지니 하는 슬로건을 내걸고 소외계층의 민심을 잡으려 애를 쓰고 있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이 때문에 각종 포퓰리즘 공약들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정작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외된 소수계층이라 할 수 있는 지역에 대한 배려는 잘 볼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물론 ‘어떤 지역이 더 낙후되고 있다’ 식의 특정 지역의 불만이나 소외감들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중앙에 대비되는 지역 소외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지 않다. 지역 주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중앙과 지역 간 격차나 소외현상에 대해 잘 알고 또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같은 지역 소외현상 중에 하나가 지역 언론 소멸현상이다. 우리 언론은 정치·경제만큼이나 중앙의존도가 엄청나게 큰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의 메이저 신문사가 전체 신문시장을 과점하고 있고, 방송 프로그램 역시 지역과는 무관한 전국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솔직히 방송사들의 지역뉴스 역시 마지못해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무수히 많은 지역신문들이 과연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역관공서나 공공기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일 때가 많다.

그나마 이러한 명목상의 지역 언론사들조차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중앙·지역 할 것 없이 종이신문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인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인터넷 확산 등으로 특정 지역에만 매달릴 수 없는 상황에서 지역단위언론사들이 존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경쟁해야하는 언론 기업들에게 지역성 담보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솔직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은 듣기는 좋지만 지역 언론 입장에서 현실과 거리가 먼 허망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지역 언론’의 문제는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지역 신문에 대해 국가가 100%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지역성을 담보하는 지역 언론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장치들은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의 미디어 정책들은 지역 언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다. 2012년 미디어렙 제정, 2014년 지상파방송 광고총량제 등은 중앙 방송사들의 광고수입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소수 특히 지역 언론들의 경영을 더욱 압박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물론 결합판매 등으로 지역 언론들의 피해를 줄이겠다고 하지만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인터넷/모바일 광고의 급성장으로 제 앞가림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언론사 몫까지 챙겨주기가 갈수록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이 추세라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언론은 물론이고 중앙 언론의 지역성조차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시·군 단위로 운영되는 케이블TV의 지역정보채널의 역할은 나름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권역별 독점 보도채널로 인한 폐해와 보도내용의 질적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소지역 언론매체로서 역할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3개 권역의 케이블TV를 대기업인 SKT가 인수·합병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IPTV 사업자가 23개 케이블TV 지역채널들을 운영하게 될 때, 지역성이 담보될 수 있을지 지극히 의문이다. 더구나 이번 인수합병 이유로 글로벌 경쟁력을 표방하고 있어 더 큰 우려를 낳게 한다. 혹시 케이블TV 지역보도채널의 긍정적 역할은 위축되고 부작용만 커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부의 면밀한 검토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황근 선문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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