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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매향리 평화마을

중부일보 2016년 01월 0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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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절(1978년), 대학입시를 앞두고 기분전환을 핑계로 교회친구들과 함께 고온리 바닷가에서 야유회를 즐긴 적이 있다. 그저 고요한 해변으로만 기억되던 그곳이 비극적인 조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50여년간 간직해왔던 곳이었다.

안개 끼는 날이 거의 없고 마을이 인접해 있어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가능한 최적의 장소라고 해서 1951년 전쟁이 한창일 때, 매향리(옛지명 고온리) 해안에서 1.6km 떨어진 ‘농섬’을 해상표적으로 삼아 사격훈련을 하다가 1952년 한미행정협정에 의해 정식으로 주한미군 공군 폭격훈련장이 되었고, 1954년부터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F-4E, F-16, OV-10, 공격용 헬리콥터 등으로 매주 월~금(5일), 연간 250일, 1일 평균 11시간 이상, 15~30분 간격으로 600여회의 로켓포, 기관포, 기총, 레이저포로 포탄을 퍼붓는 사격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사격훈련으로 50여년 세월동안 마을사람들은 환경오염과 주택파괴, 소음공해로 인한 난청현상 등의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는 오폭, 불발탄 폭발 등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기는 생명권의 위협 속에 살아왔다. 속칭 ‘쿠니사격장(koon-ni air range)’으로 불리는 매향리미군사격장은 주민들의 오랜 고전분투 속에 주민(14명)들이 낸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2001년)을 받았고, 2005년 드디어 사격장을 폐쇄시켰다.

‘쿠니’는 매향리의 옛지명인 고온리(ko-on ni)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제는 쿠니사격장의 포성과 총성은 멈추고, 철조망과 녹슨 탄피더미들, 형체만 남아있는 표적들(농섬, 윗섬, 구비섬)이 흔적이 되어 그 고통의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곳에 정화작업 중 수습된 포탄들과 주민들의 농기구 생활용품들로 조성된 ‘매향리역사기념관’이 세워졌고,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한 벽화, 포탄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아픈 역사를 음악으로 위로하고 예술로 치유하는 ‘매향리평화예술제’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매화나무 식재를 시작해왔고, 지난해는 ‘평화조각 공모전’도 열렸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에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한 아시아 최대의 유소년 ‘리틀야구장’도 건립 예정중이라고 한다.

매향리(梅香里)는 원래 고온동(古溫洞)이라 부르던 곳이었다가, 매향(埋香)이라는 이름에서, 다시 매향(梅香)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매향리(梅香里)라는 명칭은 매향비(埋香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매향비(埋香碑)는 미륵 정토를 꿈꾸는 민중들의 염원으로 향을 땅에 묻고 그 자리에 세운 비(碑)를 말한다. 왜구의 침략이나 풍랑이 잦았던 해안지역에 매향의 풍속이 있었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고성 삼일포, 경남 사천, 서산 해미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아픈 역사는 행복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에서 희망의 싹은 자란다. 그 한가운데 예술이 있다. 예술은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를 공유하는 문화를 만든다. 그리고 통일을 꿈꾸게 한다. 미륵 정토(淨土)를 꿈꾸는 매향리 평화마을은 경기만 프로젝트-에코 뮤지엄 조성을 위한 또 하나의 아프지만 희망찬 역사적 컬렉션이다.

서정문 경기창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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