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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최소한 이 땅에 숨 쉬는 한, 심심하거나 먼 산 쳐다 볼 겨를은 없다. 미끈하지 않아도 발동만 걸리는 자동차와 자갈길 아닌 신작로만 이어진다면 단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그들이 그토록 못 마땅해 여기는 우리는 물론이고 미국과 옆에서 늘 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일본사람들의 마음마저 헤집어 놨다. 핵폭탄을 미사일 끝에 매달아 마음에 안 들면 한 방씩 먹여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서다. 생각해 보면 그들 역시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우리와 같이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며 내내 왜 우리를 못 잡아서 이 난리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잊혀 질 만하면 핵으로 협박하고 간단하게 끝날 일들도 생뚱맞은 이유를 들어 두 번 놀라게 만든다. 그 때마다 우리는 무슨 곡절인지 외신을 먼저 통해 알게 되고 심지어 국방부도 이런 중대한 소식들을 나중에 알았다고 실토를 하기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한국전쟁 이후 터져대는 국내 대형 사고만 가슴을 뛰게 한 일은 아니었다. 늘 전쟁에 대한 공포는 중년 이후의 반공세대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그들은 재미를 들였는지 걸핏하면 이 금수강산에서 같이 죽자고 늙은 여자 아나운서를 통해 협박과 조롱마저 일삼고 있다. 하지만 면역이 된 탓인지 우리의 일상은 지금 평상시처럼 잘 돌아가고 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뿐인가. 국내에서 조차 매일 이념이 다르다며 시끄럽게 데모하고 이 나라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고 겁박하는 세력들이 있어도 정부는 얌전히 두고만 본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이 나라가 페허의 땅을 지켜 본 미국과 유엔참전국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경제성장을 만들어 놨는지 그저 놀랍고 신기한 겸손한 마음이다.

물론 국가의 그것처럼 개인의 삶 역시 혼돈과 모순 속에 살아가지만 최소한 북한의 이러한 협박에 국민 모두는 언제나 인내하며 버텨왔다. 이유는 국가에게 참지 못할 이유가 있어 혹은 외교적인 장외 판세가 순탄치 않거나 피치 못할 사정을 국민 각자가 알아서 긴 탓이다. 길들여졌다고 하면 좀 그런가. 하지만 국가나 개인 공히 한 가지 깨달음이란 하나의 공통적인 단어에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3~14배 위력을 가진 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는 미국 전략폭격기 B-52가 어제 한반도에 출동해 조용해 진 것도 따지고 보면 학습이론에서 비롯된 철저한 깨달음에서다. 우리나 미국 역시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일종의 무력시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비행기의 출격 사실을 공개한 것도 그들을 조용하게 한 깨달음에서다.

이런 상황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주 보다 확실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대북 확성기 방송이란 카드를 다시 꺼냈다. 지금 우리에게 북한이 만든 폭탄이 수소탄이니 뭐니 하는 따짐보다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진다. 사실상 이번 북의 도발은 북한이 남북 관계 개선에 전혀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깨달음 끝의 헛발질이다. 알다시피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가장 확실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다. 이미 북한은 지난 8월 합의를 통해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해 왔다. 그러면서 질긴 협상 끝에 이산가족 상봉 단 한 차례로 막을 내렸다. 복기하면 그들의 목적은 접경지역의 군인들이나 주민들이 동요하는 확성기 방송 중단에 있었던 일이다.

얘기가 이렇다면 망설일 일이 아니다. 예전처럼 우리가 확성기 방송에 겁을 내거나 서로가 물고 뜯으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또 다른 깨달음을 서로가 얻어야 한다. 당장 뉴스는 확성기가 있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의 일에 우리가 입을 피해상황에 먼저 짚어대고 있다. 괜한 걱정이고 해봤자 아무 영양가 없는 생각들이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법. 세상이치가 서로 주고받는 것임에 어찌 우리만 멀쩡하고 그들에게만 피해를 입힐 수 있는가. 미국과 그들이 가깝다는 중국도 감당을 못하는 지경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지킬 비상조치가 있어야 하겠고 구체적인 방법을 지금 논의하는 것이 빠른 길이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으면 우리가 핵무기를 갖는게 이 사태를 이기는 해법이다. 남은 것은 결단뿐이다. 어찌 할 것인가. 어차피 루비콘 강을 건넌 북한과 그 건너편에 서 있는 우리다.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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