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회

김광범.jpg
예고됐고, 걱정했던 보육대란(大亂)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지원하는 예산 편성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싸움에 서민들만 울화통 터지고 골병들게 생겼다. 다행스럽게 주말 사이 경기도내 31개 시·군에서 도(道)가 집행하기로 한 어린이집 준예산을 받기로 해 급한 대로 어린이집 보육대란은 두 달 동안 막을 수 있게 됐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매달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누리과정(만3~5세) 지원금을 받아 교사 월급주고, 아이들 가르치고 보육하는 데 쓴다. 엄동설한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원장 수백 명이 경기도청 앞에서 당국을 성토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한 것은 누리과정 예산확보가 늦어지면서 교사월급도 못줄 경영위기에 몰린 절박함 때문이다.

급한 대로 경기도가 준예산 상황에서 마련한 910억 원으로 어린이집 보육대란은 두 달 동안 막을 수 있게 됐다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두 달 사이 근본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두 달 후에 파행이 또 시작되면 경영에 부담을 느낀 원장들이 그 부담을 부모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못 보내는 가정이 생기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문을 닫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당초 보육대란 싸움은 경기도에서 벌어질 게 아니었다. 보육대란의 단초는 정치권에서 제공했다. 몇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권이 무상복지 확대 경쟁을 벌인 결과물이다. 2012년 대선 때도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그렇다면 이걸 해결할 책임도 정치권에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지자체에, 지자체는 대통령에게 서로 미루고 있다. 또 야당 성향을 가진 교육감들은 누리과정에 쓸 예산이 없고 대통령 공약사항이니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시·도교육청에 준 교부금이 늘어 누리과정 예산을 만드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모든 부담과 짐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한 경기도의회로 넘어 왔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현실로 들어가 보자. 지금 같은 책임돌리기식 싸움의 직접 피해자는 경기도민이다. 이쯤에서 출구(出口)를 찾아야 한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라는 벼랑끝 싸움 논리에 빠져 실기(失期)하면 예산방망이를 쥔 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설계됐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고위 관계자의 전화 한 통에 도의회 지도부가 ‘누리예산 0원’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뒷말도 있다. 이러한 설(說)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도의회 지도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조속히 통과시켜라. 그런 후에 치열하게 싸워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땜질식 돌려막기나 정파적 대립을 없애려면 이번 기회에 예산전달 체계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경기도의회가 앞장서라.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특위를 만들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의 확실한 근거와 기준을 마련하는 근본대책과 법을 만드는 데 주력하길 바란다.

도민, 서민들에게 더 이상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선의(善意) 하나만 보고 누리과정 예산안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멱살잡이까지 하며 싸운 명분이 희미해지고 체면이 깎이고, 남경필 지사의 언론플레이에 반감이 있더라도 경기도가 마련한 두 달 치 예산 910억 원부터 인정해라. 법적대응 해 봐야 소용없다. 큰 흐름은 이미 넘어갔다.

누리과정 예산 싸움이 설 명절 이후로 넘어갈 경우 덤터기는 기(起·청와대)-승(承·교육부)-전(轉·경기도)-더불어민주당 도의원들로 가는 게 눈에 보인다.

프레임의 변화가 없다면 그 덤터기는 당장 4월 총선 표심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태풍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나 여론 흐름을 보면 보육대란 가해자는 도의회 더불어민주당으로 귀착(歸着)이 불가피하다.

도의회 더불어민주당 김현삼 대표는 지금까지의 과정과 상황이 억울하지 않는가. 이런 와중에 도의회를 대표할 의장과, 협상 파트너였던 새누리당 대표는 ‘자기정치’ 한다고 사퇴하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고독하고 공허하고 가슴 아프겠지만 누리예산을 빨리 털고, 보육 시스템 정비를 위해 힘써라. 이참에 김 대표를 비롯한 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김광범 중부일보 기획이사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