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석 칼럼.JPG
이른 밤 시간, 농협 사거리는 한 청춘의 고함소리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지인의 버스 내림시간에 맞춰 정류장 앞 20여 미터를 속속 도착하는 버스의 진입에 맞춰 약간의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영글대로 영근 사내라고 부르기 조차 힘든 앳된 청춘의 악 쓰는 소리는 점점 절규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량의 소음과 함께 청춘의 악쓰는 소리는 차츰 주변의 여러 소리에 묻혀 식어 들고 있다. 물론 지금 상황에 이러한 분위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청춘은 줄지 않는 목소리로 외쳐댔다. “개 쉐이들 다 나와...다 나오란 말야...응... 안 나와 얼릉 나와... 이 쉐이들아...” 엉망으로 취한 청춘은 가슴에 맺힌 한 사연으로 누군가를 불러대고 있었다. 척 보기에 청춘은 잘해야 20후반이나 들어 보였다. 그리고 고동색 자켓에 청바지 차림이었지만 자켓 위에 늘어진 길고 검은 목도리는 이미 저질러진 토사물로 인해 엉망이 돼 있었다.

사실 농협 사거리는 한집 걸러 늘어진 술집 골목의 출구로 저녁만 되면 소돔성의 길고 늘어진 혀처럼 늘어져 있다. 해서 나이든 사람보다 파란 청춘들로 늘 메워져 있었고 청춘들의 끓임 없는 절규나 고성에 이 거리가 지쳐 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스팔트위 청춘의 이 어지러운 그림도 매일 발생하는 장면중 하나로 여겨졌다. 대체 누구보고 나오란 것인지 알고 싶지도 누구도 알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청춘은 어찌된 일인지 계속 악을 써댔고 정류장 앞에서 ‘스위트홈’으로 향하는 행인들은 계속되는 이 헤프닝에 고개만 가로 젖고 있다. 시간은 흘렀고 기온은 떨어져 차안의 온도계는 영하 10도를 가르켰다. 청춘의 이미 꼬인 혀 역시 누굴 ‘죽여 버린다’는 것인지 자신이 ‘죽어 버린다’는 것인지 조차 형편없이 발음되고 있다.

따뜻한 히터가 발아래서 나오는 차 안에서 청춘을 지켜보는 마음이 서서히 아파왔다. 나도 저런 청춘이 분명 삶의 한 가운데 있었고 누구를 애타게 나오라고 불러 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생의 한 가운데 그 절규에 답해준 사람은 기억에 없다. 어쩌면 그래서 자기 책임하의 삶이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 인지 모른다. 농협 사거리의 차디찬 아트위의 청춘 역시 마찬가지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청춘의 고통은 대개 이웃처럼 찾아오지만 그 문을 열기란 쉽지 않다. 또한 괜한 자존심의 빗장을 잘못 걸어 결정을 그릇 친 나머지 숱한 인생마저 망칠 수 있다. 그래서 청춘이 혼동하기 쉬운 대목중 하나가 상상이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것임에도 청춘은 늘 상상에 머물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우리 인구 중에 강박장애 20대가 가장 많고 미래에 대한 불안 또는 직장이나 가정생활의 스트레스로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 가운데 2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불안해서 아프다는 얘기다. 이러한 배경에는 자유롭고 여유롭게 혼자서 식사하거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싱글족의 탄생도 한몫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신조어중 혼자 밥 먹는 ‘혼밥’, 혼자 술 마시는 ‘혼술’도 이렇게 도심 한 복판을 가로막고 절규하는 청춘들의 배경이다. 이렇게 우리 청춘들은 서서히 고립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이웃 일본의 그것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가고 있다. 혼자가 꼭 외롭거나 나쁘고 여럿이 찬란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한 학회에서 밝혔듯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담배를 피우거나 운동하지 않는 것만큼 몸에 해롭다.

청춘에 해로운 일은 또 있다. 과거 교과서에 등장해 십 수년을 대학시험 문제에까지 등장해 학생들을 괴롭혀온 ‘청춘예찬’은 접어두고라도 지금 우리의 청춘들은 자신의 세대에서 개인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세대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져야 함에도 어찌된 일인지 그런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다. 새삼 지나간 수저계급론까지 동원하고 싶지 않다. 기성세대에서 외면하고 싶은 이러저러한 얘기들이지만 분명 존재하고 또 회자되며 통용되는 현실에서다. 건강한 청춘들의 길거리 절규를 들어본지 오래다.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청춘이며 피가 끓는 청춘 아니었든가.

문기석 논설실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