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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온통 판사·검사·변호사 이야기들 천지다. 영화 ‘검사외전’은 천만관객을 향해 질주하고 있고,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간만에 SBS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대박이 터졌던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에서도 판·검사들이 등장했던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법조인들 거의가 선한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아니 흔히 말하는 ‘정치 검사’들은 기본이고, 재벌이나 언론과 결탁하거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법조인들로 아예 정형화돼 버린 듯하다. 물론 정의감 넘치는 법조인들이 일부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세는 분명 ‘나쁜 인물’ 그것도 ‘극단적으로 나쁜’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아무리 드라마나 영화의 재미, 아니 흥행을 위해 현실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과장해서 묘사하는 ‘over coding’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조금 지나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더욱 특이한 것은 요즘 들어 유난히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전에 만들어졌던 우리나라의 법정 영화나 드라마들은 사실적 묘사도 약하고 스토리의 치밀함도 부족해 좋은 평을 받은 적도 별로 없고 더구나 대박이 터졌던 작품들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법정 영화들의 연속적인 흥행몰이는 분명 이변이라면 이변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굳이 ‘금수저·흙수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의 계층 간 격차와 심리적 균열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바로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 머릿속에 판·검사나 변호사는 돈과 권력을 매개하고 지켜주는 가진 사람들의 집사장 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더구나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들의 활동범위가 법조계를 넘어 정치·행정·경제 등 다른 모든 영역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느낌이다. 국회의원 중에 판·검사·변호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은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공직에서 법조인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인물 영입 최우선 순위가 판·검사·변호사 출신들이다. 이미 적지 않은 법조계 인사들이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했고, 지금도 정치권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종편채널에 출연하는 정치평론가들까지도 판·검사·변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사법고시만 붙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법조인들 중에는 깨끗하고 전문성이 높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근자에 벌어졌던 법조인들과 관련된 일들에 비춰 볼 때,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는 판·검사·변호사들은 돈과 권력만 쫓아다니는 부도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중의 심리적 코드를 절묘하게 찾아내는 대중문화 창작자들이 이런 좋은 소재를 그대로 둘리 없을 것이다. 때문에 다소 어설프고 잘 만들지 못했다 하더라도 흥행 대박이 터지고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법정영화에 환호하는 대중들은 마음속에 기저하고 있는 기대는 분명하다. 판·검사·변호사 같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의로움과 공정함 이런 것들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이들 법정 영화나 드라마들을 한번 보고 통쾌함을 느끼는 ‘사이다’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통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4월에 있을 제20대 총선에도 또 적지 않은 법조인들의 출마하려는 것 같다. 분명 그 중 일부 아니 적지 않은 분들이 금뺏지를 달고 여의도로 입성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분들도 이전에 법조계 출신들이 보여줬던 부도덕한 것들을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면, 돈과 권력에 기생하고 또 그들을 응징하는 법조인들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도 그치지 않고 나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흥행대박의 척도라고 하는 천만관객이 아니라 2천만 관객을 동원할 지도 모른다.

중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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