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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1594년, 당시 전쟁은 정점에 서 있는 유성룡과 이순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흐르지 않아 강화협상으로 소강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일본군은 남해안 여러 곳에 성곽을 구축하고 북상을 노렸다. 더구나 인근 도성에서는 역병이 돌아 백성들의 시체가 넘쳤다. 그리고1594년 3월 이순신 함대가 제2차 당항포해전을 마치고 흉도에 이르렀을 때 당시 강화협상을 하기 위해 명나라에서 파견된 선유도사 담종인이 일본군 진지에 머무르며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금토패문(禁討牌文)을 보내기 이른다. “왜군이 마음을 돌려 무기를 집어넣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너희들도(조선 수군)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진영에 가까이하여 트집을 일으키지 말도록 하라...”

담종인은 명나라 만력제신종이 특별히 파견했던 황제의 특사. 이순신이 거역할 수 있는 상대는 분명 아니었다. 패문을 받고 이순신은 잠을 못 잤고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비애를 그대로 일기책에 적는다. 이윽고 단박에 거절의 NO를 적어 날린다. “조선국 신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삼가 명나라 선유도사 대인 앞에 답서를 올리나이다. 왜적이 스스로 트집을 잡아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 진을 치고 있는 터에 우리더러 적을 토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무슨 뜻입니까? ...대인께서 이런 뜻을 널리 살피시어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해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이억기 삼가올림”

다소 긴 문장이어도 간결하다. 그리고 논리정연하다. 왜적을 토벌해야 하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거절 할 수밖에 없는 사유를 정성을 다해 고치고 다시 고쳐 썼다. 중요한 것은 단호한 의지를 밝히고 또 밝힌 것. 게다가 이 얘기가 자신의 의지뿐 아니라 전라좌 우수사 경사우수사등 조선 수군 전체의 의견임을 분명히 하는 압박전술마저 펼치고 있었다. 물론 이런 거절 역시 소통의 한 방법으로 그 거절은 당장에 어렵고 자칫 두려울 수 있다. 말하기도 불편 했겠다. 그러나 거절을 두려워만 할 이유는 없다. 거절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융합을 가져올 수도 있어서다. 부당한 승낙보다 정당한 거절이 오히려 잭임 있는 행동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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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새로 바뀐 ‘쓴소리’ 배경판을 지나 입장하고 있다. 이날 배경판에는 ‘정신차리자 한 순간에 훅간다’등 당 페이스북 공모글에 달린 댓글 400여건 가운데 당을 신랄하게 비판한 ‘뼈아픈 문구’들이 설치됐다. 연합


사그러 들었다지만 지난 주 우리와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논의 중인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의 기관지인 해방군보가 중국 공군이 1시간 내에 사드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겁박하고 있었다. 다른 관영매체들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등의 논조로 한국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심지어 유사시 북중 접경지역을 담당하는 중국군의 훈련 장면을 전해 그간 중국에 대한 불편한 오해를 고맙게도 바로 잡아 주었다. 하지만 나라관계 파탄까지 들먹인 비외교적 폭언이라도 지금 우리에게는 이를 한 방에 훅 날릴 힘이 없다는게 문제다. 그저 제주에 중국관광객들이 많이 투자해 지역경제의 불씨가 살기를 바라며 영종도에 카지노를 빨리 지어 요커들이 돈이나 물 쓰듯 쓰는 사이 북한이 함부로 대포를 쏘지 않기만 바라는 심정이겠다.

이 모두 힘이 없어 생긴 자중지란에서 비롯된 일이다. 심지어 사드가 배치되면 한·중 관계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공개 경고‘한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 대사를 과거 내정간섭을 일삼은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연상시킨 부분도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변화했다지만 믿을 만한 부분이 안되는 부분을 공감하는 이유다. 중국 외교부가 이런 추 대사의 말이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어도 이미 중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무력을 앞세워 해당국가를 억누르는 민낯을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중대성명 발표 이틀만에 150여만명 입대 지원을 했다는 뉴스에도 우리는 단 몇 명의 야당의원이 필리버스터란 이름아래 몇 일째 국회단상을 차지하고 그 시간만을 자랑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어제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새로 바뀐 쓴 소리 배경판을 지나 입장하고 있었다. 눈에 띤 것은 배경판에 새겨진 말. ’정신차리자 한 순간에 훅 간다‘등 당 페이스북 공모글에 달린 댓글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국들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따지며 설득시킬 꿋꿋장수 하나 없다. 오히려 해바라기 장군이나 그 보나 못한 나랏돈 빼먹다 걸린 예비역 장군들로 그득하다. 과거 건빵 도둑놈, 권총 도둑놈에서 이젠 비행기나 잠수정 레이더 도둑놈까지 차고 넘친다. 정치인들만 훅 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훅 갈 수 있다. 분명 당장은 여러 가지가 창피하기만 하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민망하다. 어쩌겠는가. 그야말로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으며 굳은 의지를 보이는 것만이 이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는 지혜의 수다.


논설실장 문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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