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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언(提言) 중 재미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 폐지에 관한 게 아닐까 싶다. 법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와 정치인 경제전문가 언론에서도 다뤘고, 다루고 있다. 수정법을 폐지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수정, 강화 등 의견도 다양하다. 필자도 경제부장이던 2005년부터 수정법을 주제로 몇 차례 썼다.

큰 선거를 36일 앞두고 33년째 논란이 되고 있는 수정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단면(斷面)이 궁금해 2005년 12월 쓴 ‘제로섬(zero sum)게임 그만두자’라는 글을 곱씹어보다 느낀 점은 ①정부의 땜질식 처방 ②이분법 사고 ③표(票) 장사용 립서비스 데자뷰였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여겼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도권에 있는 공기업의 지방이전 밑그림을 그리고 추진했다. 그런 와중에 파주에 LCD 산업단지 공장 신설을 허용했다. 당시 우리 반도체 경쟁력이 대만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비수도권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대구·경북의 반발이 심했다. 파주 LCD공장 신설 허용 계획을 갖고 있는 정부 고위관계자를 토론회에 불러 놓고 압박하고, 대구 두류공원야구장에선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시장·군수, 지역 각계각층 인사들이 머리띠를 매고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 철회주장에 핏대를 올렸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에도 수정법의 ‘수’자만 나와도 지방 죽이기라고 들불처럼 일어났다. 선거를 앞두고는 더 심했다.

박근혜 정부 초창기 수도권 규제 완화 의지는 대단했다. 대통령이 책상을 열 번 치지는 않았지만 수도권 덩어리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 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암 덩어리’라는 강한 표현까지 썼다. 그러나 비수도권의 반대와 이를 의식한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막혀 규제를 풀다 말았다. 규제를 베겠다는 칼은 언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칼집 속에 들어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또 수정법 폐지를 포함한 규제완화를 꺼낸 것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우리 경제의 출구가 마땅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수출로 먹고사는데 세계경제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수출길은 막히고 내수 경기도 꽁꽁 얼어 붙어있다. 기업이 안 돌아가니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리 없다. ‘창조경제’로 경제부흥을 꾀하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물 건너갔다. 창조경제가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고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 제안한다. 수정법 폐지를 포함한 규제완화에서 사방으로 막힌 경제 출구를 찾아라. 사실 수도권에 투자하려는 기업은 많다. 그런데 공장 한 평 맘대로 짓지 못하는 현실에 막혀 투자를 못하고 있다. ‘규제를 풀면 인적·물적 자본이 수도권에만 몰려 지역경제가 침체된다’는 비수도권의 논리에 함몰되면 수도권에서의 공장 신설은 물론이고 증설도 안 된다. 외국기업 유치는 고사하고 어렵게 유치한 기업도 떠나가고 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이 2008년 수도권 내에서 공장 신증설 투자 계획이 있다고 밝혔던 기업 161개사를 추적 조사한 결과 62개 기업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공장 신증설 투자 타이밍을 놓쳐 3조3천329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투자 철회로 1만2천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수도권 규제로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기업은 28곳이었고,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은 9곳이었다. 수도권을 규제로 묶어두면 수도권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규제의 풍선효과는 없었다. 기업들은 투자시기를 놓치면 투자계획을 아예 철회하거나 해외로 이전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전경련은 수도권 규제가 개선된다면 법인세수 3조9천억 원, 신규 일자리 40만2천여 개가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경제성장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수도권 규제를 풀지 않고 머뭇거릴 이유가 더 필요한가. 경제는 타이밍이다.

여야 정치권에도 제안한다. 경제활성화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규제완화에 올인하기 바란다. 이러기 위해 여야는 정파를 떠나 수도권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어라. 비수도권 눈치 볼 여유가 없다. 총선을 앞두고 요즘 발표되고 있는 소상공인 보호대책, 신혼부부용 행복주택 건설, 777 플랜 등은 당장 4월 총선에서 표를 사기 위한 선거용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규제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설명하고 설득하자. 테러방지법에 반대해 시작한 필리버스터 192시간25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33년째 논란이 되고 있는 수정법 폐지를 결론 냈으면 한다.

김광범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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