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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냉전체제 붕괴이후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를 이끌어가는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최근 중국이 양강으로 도약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때문에 미국의 정치구도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어느 정당이 집권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지구촌 전체에 아주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강한 미국을 지향하는 공화당과 인권과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당 사이에는 정책목표나 수단에 있어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급속한 변화보다 만들어진 절차와 합의된 결정들을 존중하는 미국 정치의 특성상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여러 차례 정권교체를 통해 모든 나라들이 미국 정치변화에 적응하는 훈련이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16년 미국 선거는 다르다. 그 중심에는 공화당 후보경선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있다. 불과 두 달 전 미국 대통령선거 프라이머리(primary)가 시작될 때 만해도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재벌정도로 생각됐다. 하지만 이제는 공화당 대선 주자는 물론이고 민주당 후보를 꺾고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공화당내에서도 그가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하더라고 후보로 추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최근에는 급기야 지지자들과 반지지자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이유는 ‘극단적 배타성’과 ‘단순한 적대감’에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처음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 발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종종 기독교인들이 가질 수 있는 ‘종교적 배타성’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그런 적대감이 히스패닉이나 특히 군사적/이념적 우방이라고 하는 대한민국까지 확대되는 것을 보면 혹시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트럼프의 발언들은 짧지만 아주 노골적이고 공격적 단어들이 주를 이룬다. 솔직히 정치 선전이라기보다 집단 군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선동에 더 가깝다. 때문에 그의 적대적인 공격 발언에 비례해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정도도 더욱 강해지게 마련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대중정치인이라기 보다 전형적인 선동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집단을 강하게 공격해 내부 지지자들의 충성심을 확실하게 포획하는 전형적인 ‘대중 독재자’의 모습인 것이다.

이를 보면서 ‘아! 미국이 이렇게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지난 200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해왔다고 자부해온 미국이 왜 이럴까하는 의문도 든다. 그것이 혹시 외형적으로 모든 걸 주도해왔지만 내면적으로 심리적 열등의식에 빠져있는 것 때문 아닌가 싶다. 시장과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글로벌 체제를 밀어 붙였지만 ‘평등’ ‘인권’ ‘평화’ ‘복지‘ 같은 반대 이념들에게 시달려온 피로감의 결과 아닌가 싶다. 마치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도 이념 전쟁에서 패배했던 베트남 전쟁 때처럼 말이다.

많은 나라에서 이데올로기 영역은 진보진영의 전유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면에 보수주의는 비겁하고 이기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때문에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강한 이념을 내건 지도자’를 간절히 원하기 마련이다. 마치 ‘히틀러’나 ‘뭇솔리니’ 처럼. 에릭 프롬(Eric Fromm)이 지적한 것처럼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해 절대 권력자에게 예속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가 졸지에 그런 사회가 될 수는 없겠지만 트럼프의 돌풍은 미국사회가 가진 심리적 소외감을 엿보여주는 것 같다.

혹시 20년 가까이 극단적인 이념갈등에 시달려온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아노미적 극우파나 극좌파’들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더구나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 정치권과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다. 트럼프의 돌풍이 ‘먼 남의 집 일’로만 생각되지 않는 이유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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