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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7월 막스 플랑크와 발터 네른스트는 취리히행 기차에 올랐다. 34세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베를린으로 데려오기 위해 파견된 독일 과학계의 대표 자격이었다. 그들이 가져간 보따리 내용물은 세 가지였다. 프로이센 과학원에 존 재하는 두 개의 유급직 중 하나, 강의 부담이 없는 연구교수직, 그리고 카이저 빌헬름 이론물리학 소장직이었다. 아인슈타인 뿐만 아니라 당대 과학자라면 누구든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그래도 20년 전 그리 즐겁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독일을 떠나왔던 아인슈타인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플랑크와 네른스트는 짧은 관광을 떠났고 그들이 돌아오면 자신의 결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자신이 들고 있을 장미꽃이 붉은 색이면 베를린으로 떠날 것이고 흰색이면 취리히에 남을 것이라고...

역사가 이미 알려주었듯이 아인슈타인은 베를린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과학저술가 만지트 쿠마르는 그의 저서 ‘양자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에서 자못 낭만적이었던 아인슈타인의 베를린 행을 이렇게 서술하면서 그가 후일 로렌츠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한다. 베를린이 아인슈타인을 데려가는데 성공한 이유는 ‘오직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유’를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연파했을 때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창업을 할 때 AI에 대한 개념이 생소하다보니 투자자들이 ‘다들 지나치게 학문적이다’라며 투자를 꺼렸다... (중략) ...거시적인 관점에서 스스로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 허사비스는 널리 보도된 바와 같이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고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에너지 넘치는 수재다. 그런 인재들이 겁 없이 창업을 하고 구글은 겁 없이 그들이 세운 회사와 협업한다.

세계 최고의 지식과 통찰이 독점적 부(富)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은 더 증명할 필요가 없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지금 최초의 지식과 기술은 그 자체로서 곧 표준이 되고 부를 독점하는 수단이 된다. 과학과 기술의 혁명을 이끈 연구자들은 극소수였지만 인류는 싫든 좋든 예외 없이 그들이 열어놓은 세상을 살아가야 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최고 수준의 창의력으로부터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그 플랫폼 위에서 수많은 세부적인 기술과 비즈니스가 자라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예외가 없다.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이 현실적이고 실질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은 맞지만, 그렇다고 2등 기술이나 피상적인 지식만으로도 실효성이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적어도 과학의 세계에서 두 번째는 별 의미가 없다.

청년실업률이 치솟고 노인빈곤은 극심해지고 있다. 1∼2년 사이에 끝날 역경이 아니다. 그래서 신산업과 신성장동력이 절실하다고 한다. 절실하다면, 절실한 만큼 소수의 인재가 다수의 먹거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우수한 소수만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평범한 대중을 먹여살릴만한 특별한 소수의 인재는 그들이 소속된 사회의 현명함과 인내로부터 나온다. 과학자들에게 행정 부담보다는 연구의 수월성을 요구하고, 그들이 낳게 될 과학적 성과를 부로 변환시키는 효율적 방법을 찾으며, 그것을 다시 다수의 이익으로 분배함으로써 건강한 선순환을 유도하는 현명한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 침대에 키를 맞추려는 관료적 평등주의를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조급증과 성과주의의 유혹을 참아내야 하는 것도 정책 입안자와 당국 실무자의 몫이다.

경기도 인구는 웬만한 유럽 국가들보다도 많다. 1년에 20조 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다루면서 ‘지방’이라는 말 뒤에 숨기에는 감당해야 할 책임의 규모가 너무나 크고 절박하다. 온통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정책당국자는 남 탓이나 제도 탓을 하기 전에 과학자 그룹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긴 호흡으로 현명하게 과학자들을 활용해 근원적인 돌파구를 타진해야 한다. 우왕좌왕 무지개 사업들만 쏟아내다가는 피와 같은 세금은 누구의 책임인지도 모른 채 증발해버릴 것이다.

붉은 장미를 든 아인슈타인과 실리콘밸리에 득실거리는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명심하자. 결국 인재다. 최고급 인재 그룹이 우리나라에 있어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고, 우리 회사에 있어야 우리 회사에 미래가 있으며, 우리 고장에 있어야 지역사회에 미래가 있다.

정택동 화학·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부원장(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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