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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프로이드도 인간에게는 삶의 본능(Eros) 뿐 아니라 죽음의 본능(Thanatos)이 있어서, 인간이 벌이는 모든 비이성적인 폭력과 파괴행위는 이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라고 해 본능 자체가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며 이 같은 야만의 본능을 공동체에서 용인되는 방식으로 억제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부모가 되는 과정 역시 따라서 후천적인 습득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혹자는 모성을 본능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치사사건들은 이 같은 모성 역시도 제대로 된 학습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기적인 파괴본능 앞에 무력하기 짝이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이 욕망을 위해 혈육까지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번 역사를 통해서 입증된 바 있다.

인간에게 내재된 이기심과 잔혹성을 억제하는 데에는 훈육과 교육을 통한 후천적 학습이 한 가지 대안일 수 있겠다.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4월 초 발표한 아동학대 종합대책에서 부모교육에 초점을 둔 정책은 이런 차원에서 적절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교육을 통해 통제력이 부모에게 내재화 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현재 이 시점에서 가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인데, 이는 이미 발굴되고 있는 사건들 때문인데, 아이들의 주검이 발견되기 한참 이전부터 위기상황들은 이미 심각하게 진전이 돼 있었다.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일반제지’와 ‘특수제지’이다. 이번에 발표한 정부의 대책은 일반제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잘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가정 내에서 아동학대의 문제가 발생해 심각하게 진전이 된 경우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인가? 이에 관련된 정부의 조치 중에는 신고의무자의 범위를 넓히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교육을 검사의 명령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집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있다. 즉 선도교육을 조건부로 해 기소를 유예시키거나 불기소처분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아동학대 상습가해자에 대한 특수제지의 효력이 충분히 발생할 것인가?

아동학대사건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함께 같은 집에서 거주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무부는 가해자 분리를 우선적으로 집행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조치일 뿐, 가해자들은 다시금 피해자인 가족을 찾아 돌아온다. 우리는 이미 가정폭력사건의 처리절차에서 가해자의 분리가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했다. 하물며 피해자가 성인도 아닌 아동의 경우 가해자의 가정복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대학시절 몇 년을 아동보호시설에서 자원봉사자로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집단생활을 해서는 아이들이 잘 자라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결국 자기자식은 부모들의 힘으로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꼭 회복돼야 하는 기능인데, 아이를 체벌하는 습관을 버리고 올바른 부모 노릇으로 신뢰관계를 회복시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같은 노력을 자발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타율에 의한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할 것인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감시와 개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꼭 강제력이 동원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바로 서구사회의 인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미한 아동학대 사건으로 신고 된 이후 부모에 대한 사후관리는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거의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게 돼 있다. 하지만 영미법 국가에서는 경찰신고 이후 꼭 법원이 관리감독을 하도록 한다. 사법기관인 법원의 판사는 직접 아동학대 사건의 사례관리를 하는 주체로서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법원은 가해자가 민간 위탁 교육을 제대로 이수했는지, 조건부 처분 중 다시 재학대를 했는지 철저히 감시한다.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아동학대를 다시 일으킨 가해자에 대해서는 법원은 구속은 물론이고 중범으로서 다스린다. 이때 친권 제한은 당연히 고려되는 사안이며 다른 가정에 피해아동을 위탁하는 명령도 긴급히 결정해 집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조치의 가장 강점은 전담재판부가 직접 가해자에 대해서는 교육명령을 포함해 선도가 될 수 있도록 강제력을 발휘한다는 것이고 피해아동에 대해서는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조치를 긴급하게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4월 초 발표한 정부의 조치 중 법원의 적극적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이 매우 의아하다. 뭔가 빠진 듯한 단추고리는 바로 사법제도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절차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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