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s.jpg
이보다 더 억울하고 원통한 일도 없다. 잘 차리고 싶은 밥상에 더할 국을 가져가다 발 한번 삐긋해 국을 쏟고 뜨거운 국물에 발등을 데고 게다가 원치 않던 욕까지 듣는다면... 이번 선거가 꼭 그 짝이었다. 더민주당이나 선거 두 달을 남기고 급조한 국민의당도 그렇지만 새누리당의 과반석을 향한 그야말로 잘해보고자 애쓴 공천부터 선거까지 모두 이에 해당되는 실례다.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은 한마디로 “우리 정당에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그때그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의 생각·욕심·야심이 작용하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대통령이 다 되어 있다고 믿고는, 과거 3김 같은 카리스마도 없으면서, 전 구성원을 이끌고 갈 큰 가치도 없으면서, 신뢰조차 못 받으면서, 혼자서만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죠. 그게 먹혀들 리가 없었던 거죠.” 전남 순천에서 지역을 타파하고 연이어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말한 새누리 고질병에 단면이다.

나는 이 의원 말끝의 사람들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짐작해 봤다. 모르긴 해도 총선과 관련해 가장 책임 있을 얘기들을 듣고 있을 그 사람들이 분명하다. 3인방이니 4인방이니 하는 말조차 우습다. 하지만 지금 역시 과거와 같이 그들은 듣기에도 애매한 말과 애먼 제스추어로 손안의 미꾸라지 빠지듯 그렇게 또 흙탕물로 사라졌다. 언제는 정치가 그리고 정치인이 책임지는 모습을 제대로 한번 보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너무하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이유다. 결국 선거와 관련된 개인들도 그렇지만 한참 불받은 새누리당의 모양새에 발 빠른 한 매체가 이번 총선결과 만족도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처음과는 다른 뜻밖의 결과에도 국민 10명 중 7명이 만족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전부 믿기는 어려운 요즘의 여론조사다) 더구나 보수층 반수 이상도 결과에 만족한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이번 새누리당의 참패원인이 자명해지는 순간이다. 짐작들은 했지만 민주당이 예뻐서 찍어 준 게 아니라 새누리당의 원조 팬으로 불리는 중년 이상의 보수층 세력이 곁길로 빠진 것이다. 정리해보면 야당의 승리가 새누리당의 잘못에 의한 반사이익 이었던 셈이다. 좀 전에 언급한 조사에서도 국민 다수가 새누리당 심판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약진으로 해석되는 총선 결과를 흡족해 하고 있었다. 이 무슨 얘긴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패배에도 만족한다니. 여기에 불을 붙인 진보나 중도층이 선거판에 예외 없이 참여했으니 그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 끝난 마당에 복기를 해 본들 별 소득은 없다. 하지만 복기는 바둑의 그것과 같이 다음의 똑같은 실수를 안하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지금의 4년은 어김없이 4년 후 라는 시간을 다시 약속하고 있다.
cats.jpg

문제는 지금부터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지만 맛뵈기로 나온 여론조사 항목중 차기 대선 후보 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돌직구로 물어봤다. 내일이 대통령선거일이라면 어떤 후보를 찍을 것인가. 짐작하겠지만 이 질문에도 사람들은 야당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분이 덜 풀린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부터 시기상조라는 말이 맞을 수 있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게 녹록하게만 돌아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20.5%로 1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8.9%로 2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3.5%로 3위, 박원순 서울시장이 6.0%로 4위였다. 당장 새누리당 사람들안에는 정치 1번지를 자신하다 고배를 마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5.1%로 5위를 기록한 게 전부다. 물론 물러터지게 변방에서 얻어 맞다 그새 자리를 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7위를 기록했지만 이미 금.은.동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것을 모를 그가 아니다.

이정현 의원 말대로 지금 정당이 가치도 리더십도 없어 JC(청년회의소)만도 못하다면 이런 정당의 존재가치 또한 의문으로 남게 된다. 다시 그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유는 대표적 친박계를 떠나 가장 국회와 새누리당에 대한 모든 것을 까놓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새누리 골수의원이란 점에서다. “우리 정당과 국회의 근본 문제를 치료해야 합니다. 중략. 당 최고 의결 기구인 최고위원회도 국가적 정책을 위해 진지하게 회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비공개회의로 들어가면 환담·잡담만 합니다. 이게 1년에 6백억~7백억원씩 세금 지원받는 우리 정당의 모습입니다. ” 경기도 수부도시 정치1번지라는 수원에서 새누리가 5석중 단 한 석도 못 얻었다. 보수진영이었던 갑(장안)이 돌아선지 오래여서 그렇다쳐도 새누리 중앙당에서 한껏 기대했던 수원병(팔달)도 허물어졌다. 개표끝물 13일 늦은 밤, 수원사람들에게 남문이라 불리는 팔달문 옆 주점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다들 팔달산에 기어올라 뛰어내려” 민심은 바뀌게 마련이었다.

문기석 논설실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