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gif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이 스스로 해산 절차를 밟은 가능성은 거의 없다. 행정권력만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도(道) 산하기관 군살빼기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몫이 됐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의 현상 유지, 다른 하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외통수’에 몰려있는 셈이다. 남 당선인은 야당과 연정(聯政) 실무협상을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쪽을 선택할 경우 협상테이블에 이 문제도 함께 올려놓고 ‘원샷’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중부일보 2014년 6월 16일자 ‘남경필 도지사 당선인의 과제’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약 두달 뒤인 8월 5일 남 지사와 경기도의회 거야(巨野)는 경기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권한을 나누는 정치 실험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냈다. 그들만의 룰은 이권(二權) 분립의 원칙을 파괴했다. 양립(兩立)할 수 없게 된 입법과 행정은 그때 그때 입맛에 따라 작동했다. 시간당 7천30원인 ‘생활임금’은 관속(官屬) 근로자만을 위한 우월적 임금 제도로 ‘알박기’했다. ‘열정페이’ 수준인 민간 영역의 최저임금은 시급(時給) 6천30원이다. 세금으로 만들어 낸 1천 원의 차이는 민관(民官)의 임금 격차를 불러왔다. ‘공시폐인’에 이어 ‘관제(官制)알바’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판이다. 질풍노도의 정치는 법치(法治)까지 범했다. 도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는 내 나라 법에는 없는 변칙이다. 도의회 청문장에 선 CEO후보 6명중 2명이 낙마했다. 야당 몫 사회통합부지사는 궁벽한 정치사를 웅변해주는 쓰라린 상징이다. 도의원에게 넘겨진 수백억 원짜리 ‘백지수표’(사용처 없는 예산)는 자투리 사업으로 쪼개졌다. 여기까지가 시대정신으로 포장된 협치(協治)요, 가짜 연정(戀情)의 민낯이다.

합의서는 여야(與野) 연합정치의 명줄을 쥔 동아줄이다. 합의문에 첨부된 20가지 정책은 경기연정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혈서(血書)다. ‘도 산하 공공기관의 경영합리화 방안을 모색한다’는 조문은 움직일 수 없는 약속이다. 어떤 논리, 어떤 이유, 어떤 핑계로도 폐기할 수 없는 ‘절대가치’다. 도 산하기관이 맞딱뜨린 운명은 지난 20년간 뿌린 만큼 거둔 열매다. 위인설관(爲人設官)된 기관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떼법’의 발현(發現)이다. ‘파킨슨 법칙’을 작동시킨 기관의 반대는 밥그릇 타령이다. 예산으로 연명하는 기관의 반발은 블랙 코미디다. 공짜 티켓이나 뿌려대는 기관의 행태는 목불인견이다. 옥동자를 낳을 수 없는 불임(不姙) 단체의 주장은 궤변이다. 구조조정 시대에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공공성’은 언어도단이다.

단언컨대, 도 산하기관은 혁신(革新)할 권한도 예산도 없다. 과학기술과 항만은 정부의 몫이다. 영어 공교육은 혹세무민하던 시절 얘기다. 짜집기 수준의 보고서는 지천에 널렸다. 땜질이나 하는 3류 시설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인건비 빼면 이익단체 뒤치닥꺼리 해주기도 벅찬 기관의 유효기간은 다했다. 건물 관리나 하는 기관이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정체성 잡탕 기관의 생존 몸부림은 자학 개그다.

도 산하기관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은 ‘살리고 또 살려준’ 역(逆)먹이사슬이 만들어 낸 막장극이다. 경기도는 문어발식으로 만든 산하기관에 배설물을 쏟아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동서고금의 이치를 거슬렀다. 숨통을 끊지 않는 대가로 ‘더 간섭’한 결과는 동업자의 목을 쳐야 하는 비극을 잉태했다. 경기도의회는 ‘좀비기관’을 지켜주는 최상위 포식자다. 수익성 문제는 공공성으로 덮어준다. 수명을 다한 기관은 생존을 위해 이익단체를 앞세운다. ‘경기도↔경기도의회↔산하기관↔이익단체’를 잇는 사슬은 느슨한 듯 하지만 강고(强固)하다.

대처 총리와 레이건 대통령은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영국병을 치유하고, 미국 경제를 되살렸다. 합의서는 선거와 경선이라는 대의 민주주의가 낳은 경기연정의 총아다. ‘그때 나는 반대했다’는 독고다이식 정치인에 대한 심판은 미래형이다. 단 맛에 취한 경기연정이 이번에 제대로 시험대에 섰다. 지금부터가 시대정신인 협치요, 진짜 연정(聯政)의 맨얼굴이다.

한동훈 편집국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