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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선거가 엄청난 이변을 연출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 충격이 너무 커 그런지 지금까지도 여진이 만만치 않다. 그 와중에 여·야가 간판으로 내건 두 명의 여성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에도 대한민국 공직사회에서 빠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온 단골메뉴 논문표절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SNS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보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 아니 불치병을 또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첫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의 태도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전히 철옹성 같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아무런 해명이나 변명조차도 내놓지 않고 있다. ‘맘껏 떠들어 봐라. 그래봤자 소용없다. 그러다 말겠지’ 하는 식이다. 개혁이니 쇄신이니 하는 온갖 거룩한 말들을 쏟아 내놓고 선거를 치룬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번에도 슬그머니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이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을 보면 더욱 한심하다. 그야말로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다. 나하고 같은 편이거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후보자는 무조건 옹호하고, 반대하는 정당 후보자는 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 동안 정치인들의 표절문제를 강하게 비난해왔던 단체들조차 이번에는 그 온도가 많이 다르다. 그러면서 ‘누가 더 심한가 아니면 더 나쁜가’하는 경·중을 따지려 든다. 표절에 대한 합리적 논쟁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매몰된 쌈박질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먹물 좀 들었다는 사람들조차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진흙탕 싸움에 끼워들고 있다.

셋째,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러한 논문 표절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일반 사람들에게 논문 표절은 먼 남 이야기 일수도 있고, 현금이나 금품을 도난당한 것도 아니어서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또 앞에 ‘경영, 행정, 언론, 정치, 산업’ 같은 그럴듯한 접두어들을 가져다 붙인 ‘솔직히 학문탐구와는 거리가 먼 대학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어 버린 특수대학원’들이 부지기수로 난립해 있고, 돈과 권력으로 학위를 사는 ‘구제박사’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보니 표절이 만연되어 무감각한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하지만 표절은 ‘물질이 아닌 정신을 도둑질하는 행위’로 일반 범죄보다 사회적 폐악이 훨씬 더 크다. 정신적 도둑질로 취득한 장물을 가지고 더 큰 돈과 권력을 획득하는 더 큰 범죄의 매개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오래된 병폐 때문이지만 학위를 일종의 자격증처럼 간주하는 저급사회가 더 문제인 것이다.

솔직히 이번에 대상이 된 두 비례대표 당선자들 역시 국회의원이라는 무소불위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과 의혹을 받고 있는 표절행위가 전혀 무관하다고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제자들의 논문을 표절해서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갑질 중에 갑질’인 것이다. 그것은 제자들을 자기의 개인 사유물처럼 ‘사유화’하고 있는 우리 대학 교수들의 잘못된 인식구조가 만들어 낸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다분히 유난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논문표절이 사실이라면 그 정도에 관계없이 정치를 할 기본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인 것이다. 범죄로 취득한 장물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하는 자리에 앉아서도 안되고, 더구나 그 장물이 제자들에게 갑질로 취득한 장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개인의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를 넘어 국가라는 공동체의 건전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논문표절의 문제는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표절을 했느냐 하는 사실문제인 것이다. 실제 그렇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제 새로운 국회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떠드는 여·야가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의지 표명 차원에서라도 표절의혹이 있는 국회의원들을 한번 정리하는 것은 어떨까. 장물을 발판으로 획득한 정치권력을 용인한다면 그 정치권력도 장물일 수밖에 없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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