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란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조각가가 조형성과 공간성의 관계를 탐색하거나 공예가가 기능성과 장식성을 탐구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말이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마티스의 ‘춤추는 사람들’, 뭉크의 ‘절규’ 등의 작품들은 결국 입체주의, 야수파, 표현주의의 내용과 형식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걸작의 이미지로 누구에게나 이해되고 감상된다. 다시 말해 성공한 화가란 자신이 주장하는 시각의 논리와 표현을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창적 이미지로 창출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운보(雲甫) 김기창은 생전에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화의 거장이었다. 2002년 그의 타계 1주년 즈음해 ‘바보천재 운보그림전’(덕수궁미술관)을 기획하면서 그가 평생 그린 그림의 소재와 주제의 방대함과 가히 당대 최고였던 필력과 화면구성력에 감탄을 금하기 어려웠다. 후천성 청각장애자였던 운보는 세상의 소리를 못 듣는 대신 약 2만 점이 넘는 작품을 기록적으로 제작했던 화가였다. 17세의 나이에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7세에 작고하기까지 운보는 우리 전통회화를 현대화하는데 큰 공헌을 한 실험적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 스스로 창안해 낸 ‘바보산수’ ‘청록산수’ ‘문자도’ ‘걸레그림’ 등은 운보의 동양적 세계관이 현대적 미감으로 발전된 사례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후대에 이르러서도 그의 수많은 그림들을 하나로 묶어 일명 '운보양식'이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화면은 전통화론의 영역에서 이른 바 ‘기운생동’이라 일컫는 생명력 충만한 이미지들의 향연이다.

김기창,<태양을 먹은 새>, 1968년, 두방에 수묵채색, 31.5×39㎝
1968년작인 ‘태양을 먹은 새’를 보면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운보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치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양을 먹은 새라! 과연 그 새는 얼마나 클까? 그리고 얼마나 뜨거울까? 날개의 길이가 삼천 리에 이르고 하루에 구만 리를 날아간다는 전설의 ‘붕새’가 태양을 한 번에 집어 삼켜 온 몸이 빨갛게 달아올라 볏이 곤두서고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천지를 개벽시키는 순간이 이렇겠지’라는 상상을 자극한다. 운보는 이 작품에 대해서 “나의 분신과 같이 아끼는 작품이다. 비록 소품이긴 하나 우주로 비상해 우주 자체를 집어 삼키고 싶은 내 심정의 표현이기도 하다.”(「나의 그림 나의 생각」, 『현대인』 1976년 4월호) 라는 글을 직접 남겨 놓았다. 태양보다 더 뜨거웠고 우주보다 더 창대했던 운보 김기창의 예술혼을 상기해 보면서 여름을 시작하고 있다.

최은주(경기도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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