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샤샤의 기적', '스릴러 인 마닐라' 등 숱한 명승부 남겨

▲ "내가 최고다" 첫 챔피언에 오른 도전자 무하마드 알리가 소니 리트슨에게 외치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면에 들어간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혁명가였다.

 알리는 같은 체급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펀치가 압도적이지 않았지만, 대신 현란한 풋워크와 빠른 주먹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명언은 그가 어떻게 경기를 펼쳤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알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복싱 스타일을 구축했다.

 긴 팔을 이용해 상대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노렸고, 가드를 올리는 대신 팔을 늘어뜨리고 유인했다.

 알리는 복싱 선수로 최전성기였던 25세 때 베트남 전쟁 징집에 거부, 3년 5개월동안 프로 선수 자격을 빼앗겼다.

 복귀 후에는 예전과 같은 순발력으로 상대 주먹을 피하기 힘들어지자 로프를 등지고 상대 주먹의 충격을 흘려 버리는 전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알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했고, 정상 자리를 계속 지켰다.

그래서 복싱사에서는 알리를 '만능형 복서'를 완성했다고 평가한다.

 1960년대와 70년대 복싱 전성시대를 지배했던 알리는 숱한 명경기와 명언을 남겼다. 

▲ 무하마드 알리(오른쪽)와 조 프레이저의 3차전, '스릴러 인 마닐라' [AP=연합뉴스]
◇ "무어를 4회에 KO 시키다"…전설의 시작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알리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치를 떨며 금메달을 강물에 집어 던지고 프로로 전향한다.

 프로로 전향한 뒤 알리는 지역 유지들의 소개로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아치 무어로부터 훈련을 받는다.

 알리와 무어의 사제로서의 인연은 길게 가지 않았지만, 대신 둘은 1962년 11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당시 알리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선수였고, 무어는 만 48세였지만 강력한 주먹을 자랑했다.

 알리는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무어를 4회에 KO 시킨다"고 대기실에 적었고, 그 말 그대로 노쇠한 무어를 두들겨 4회에 KO 승리를 거뒀다.

 알리는 주먹만큼이나 말의 힘이 크다는 걸 느꼈고, 이후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숱한 어록을 남겼다.

▲ '킨샤샤의 기적' 무하마드 알리(오른쪽)가 조지 포먼과의 타이틀 매치에서 8라운드 KO 승리를 따냈다. 
 ◇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복싱의 전설 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복싱뿐만 아니라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말이다.

 알리는 1964년 2월 25일 마이애미비치 컨벤션 홀에서 WBA·WBC 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과 맞붙였다.

 경기를 앞두고 알리는 이와 같은 말을 했고, 역사에 남을 명언이 됐다.

 리스턴은 역대 복싱선수 중 가장 강한 펀치를 지닌 선수로 꼽힌다.

 1990년대 헤비급 복싱을 풍미한 마이클 타이슨처럼, 주먹 한 방으로 거구의 상대 선수를 거꾸러뜨리기 일쑤였다.

 알리는 리스튼과 같은 강펀치는 없었지만, 대신 '알리 스텝'이라고 불린 풋워크가 있었다.

 1라운드부터 알리는 현란한 풋워크와 순발력으로 나비처럼 리스턴의 강펀치를 피했고, 빈틈을 노려 펀치를 벌처럼 쐈다.

 약이 오른 리스턴은 더욱 거세게 알리에게 덤벼들어 체력을 소모했고, 알리는 3라운드 이후 연타로 계속해서 리스턴을 괴롭혔다.

 결국, 리스턴은 눈이 부어 더는 싸울 수 없게 됐고, 알리는 7회 TKO승으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다.

 벨트를 들어 올린 알리는 "내가 최고다!(I am the greatest!)"라는 명언까지 남긴다.

 ◇ 킨샤샤의 기적, 링 밖에서 빼앗긴 챔피언 벨트 되찾다

 1967년, 알리는 베트남전 징집을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차별하는 세상과 싸울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내가 왜 다른 이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나"라는 말로거부한다.

 알리는 챔피언 벨트도, 프로 복싱 선수 자격도 빼앗긴다.

 선수생활 전성기를 법정 다툼으로 허송세월한 알리는 1970년 복귀했지만, 나비와도 같았던 풋워크는 무뎌졌다.

 그래서 알리는 변신했다.

 1974년 10월 30일, 알리는 WBC·WBA 챔피언 조지 포먼과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 킨샤샤에서 맞붙었다.

 역대 최강의 주먹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포먼은 당시 24세의 신예였고, 알리는 32세의 노장 복서였다.

 도박사들은 다들 포먼의 승리를 점쳤고,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다.

 알리는 8라운드까지 로프를 등지고 포먼의 주먹세례를 참고 견디기만 했다.

 빈틈만을 엿보던 알리는 8라운드 종료 직전 기습적인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포먼얼굴에 적중시키고, 나비처럼 코너에서 빠져나와 전광석화 같은 주먹을 날려 KO 승을 따냈다.

 지금까지도 '킨샤샤의 기적'이라고 회자하는 복싱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 조 프레이저와 세 차례 혈투

 "신이시여, 저 녀석을 때려눕힐 힘과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알리는 수많은 독설로 적이 많았다.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조 프레이저는 알리를 평생 증오했는데, 알리가 선수 자격을 빼앗기자 탄원서까지 써주며 그를 도왔지만 돌아온 건 "엉클 톰(백인에게 굴복한흑인을 얕잡아 부르던 말)"이라는 말이었다.

 프레이저는 1975년 10월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알리와 경기를 앞두고 이처럼 기도했다.

 알리와 프레이저는 챔피언 자리를 놓고 세 번 붙었다.

 1971년 3월 8일 열린 둘의 1차전은 15라운드까지 가는 혈투였다.

 도전자 알리는 15라운드에서 챔피언 프레이저의 왼손 훅에 맞고 판정패한다.

 알리의 생애 첫 패배였다.

 1974년 둘의 2차전은 판정 논란 속에 알리가 승리를 거뒀고, 이듬해 3차전을 벌인다.

 알리는 경기 전부터 프레이저에게 독설을 퍼부어 심리전을 벌였고, 프레이저는 이에 응답하는 대신 가슴에 증오를 품었다.

 둘의 3차전은 '세기의 경기'로까지 불리며 전 세계가 주목했고, 혈전 끝에 알리가 14라운드 TKO 승리를 거둔다.

 프레이저는 눈이 부어 암흑 속에서 알리의 주먹을 견뎠고, 알리 역시 체력이 다소진돼 간신히 버텼다.

 알리의 입담은 여전했는데, 프레이저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다. 나다음으로"라고 말했다.

 이들의 혈전은 2008년 '스릴러 인 마닐라(Thrilla in Manila)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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