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천재들의 이야기이고, 그런 거 몰라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 없다. 다만 우리가 던져봐야 하는 질문은 지금 또는 미래에 우리나라에서 그런 사유(思惟)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연구라는 것이 지적 유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오늘날 세계사의 주역이 된 나라들의 힘이다.
사람 숫자가 적은 것 같지는 않다. 스웨덴도 스위스도 경기도보다 인구가 적은 국가들인데 그들의 1인당 GDP는 부러울 지경이다. 이들의 최대 자산은 인적인 지식 인프라다. 무엇보다 이들 나라에서는 과학이 생활이고 문화다. 조그만 소도시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소가 있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곳을 이웃으로 두고 드나들며 자란다. 이들의 지식 시스템은 열려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좋은 인재로 키워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우수한 외국인 인력이 자기네 나라에 오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다. 예컨대, 우수한 인력은 우수한 인력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경기도를 보자. 비록 경기도가 지출하는 돈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전체에서 한 해 연구개발에 투자된 액수 중 거의 절반이 경기도에서 집행된다. 연구개발 인력의 숫자도 1등이다. 하지만 경기도가 잘해서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간 기업들이 경기도의 입지 조건을 선호하기 때문일 뿐이다. 경기도에서 지출되는 연구개발비의 94%, 경기도 내에 존재하는 연구개발 조직의 98.5%가 민간 기업이다. 그에 비하면 경기도가 자신의 예산에서 직접 집행하는 액수는 극히 미미하며, 지방정부의 연구개발비 부담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매우 낮다. 과학기술에 관한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지방스러운’ 행정을 하는 곳이 경기도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연구개발 방식은 이른바 인하우스(in-house) 전략이다. 제품에 필요한 기술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회사 내에서 보유하려 한다. 최근 무섭게 떠오른 글로벌 기업들이 취하는 전략에 비해 상당히 폐쇄적인 편이다. 하청을 받아 살아가는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도 수직 계열화에 익숙하다. 그 때문에 경기도 내에 대기업 사업장이 많고 그들의 연구개발 투자 액수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거액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나마 규모가 있는 부품업체는 특정 대기업의 하청에 의존하고 있고 대기업 납품을 못하는 중소기업은 과학기술 지원의 실효성이 적은 후진국형 수공업이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기도가 어디에 돈을 써야 하는지는 명료해진다. 경기도 의회와 정부는 민간이 하지 못하는 연구개발의 기초 체력을 보강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힘의 원천을 키워주어야 한다. 경제에 있어서 기초 체력의 요체는 지적(知的) 토대이다. 강력한 지식 기반 없이는 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향후 수십 년 간 먹여 살릴 큰 그림은 그리기 어렵다. 과학기술이 문화로서 지역사회에 배어들도록 신념을 가지고 정책을 펴야 하며, 고급 인재가 몰려드는 구심체가 생기도록 유도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실리콘 밸리를 흉내 내려 하지만 흉내에 그치는 이유는 중심이 될 만한 대학이 없기 때문이며 세계적인 대학은 하루아침에 생겨날 수가 없는 탓이다.
요즘 경기도에서도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바이오 등 미래기술에서 국제 표준을 선점해야 된다며 떠들썩하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지속가능한 과학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임시적인 외부 컨설팅에 의존해봐야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고, 산하 기관을 늘려 ‘관료적 연구개발’을 하겠다고 나서면 결국 수준 미달의 통폐합 대상만 더 만들게 될 것이다. 나무에만 집착하다 숲을 놓치는 지방스러운 행정은 이제 그만!
정택동 화학·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부원장(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