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안전, 무엇이 문제인가? 4대 강력범죄의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G20 국가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개 국가 중 상대적으로 가장 높다는 사실은, 범죄발생률 자체가 현저히 낮은 한국에서도 여성의 안전에 대한 문제야말로 공론화 돼야 하는 이슈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오원춘사건의 피해자인 젊은 여성이 귀갓길에 납치됐다가 그 다음 날 아침 산산조각 나 발견됐던 사건 못지않게 강남역 공용화장실에서 처참한 꼴로 발견된 젊은 여성의 주검은 온 여성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여성 누구나 똑같은 그저 그런 일상 속으로 예고 없이 비집고 들어온 죽음은, 여성들만을 넘어 온 사회 전체를 범죄에 대한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계기가 된다. 등하교 하는 아이를 두었거나 출퇴근 하는 엄마를 둔 가족이라면 누구나 나의 사랑하는 딸이 그리고 아내가 안전하게 귀가했는지 염려하게 만든다.

경찰은 강남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피해망상을 지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범죄라고 정의하고 치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정신질환자들 중 사회안전에 위험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행정입원을 강제하기로 결정했다. ‘조현병’, 즉 정신분열증의 유병률 상 50만 명이 현재 치료대상일 것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다만 10만 정도만이 진료기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볼 때, 경찰의 이번 조치는 일견 적절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다고 판단된다. 폭력적인 에피소드를 지속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병식이 없다는 이유로, 혼자 사는 이유로 의료기관을 찾지 않는 환자들의 위험범죄 발생 시에는 꼭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에게 치료를 적절히 제공하기까지의 과정은 많은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인권논란이 없도록 진행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인가? 부조리하게도 여성들이 가장 위험에 노출되는 장소는 가정이다. 일 년에 2만 건 이상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중 반 이상은 잘 알고 있는 남자들로부터 피해를 받는다. 친부, 애인, 전남편 등. 또 다른 2만 건 이상을 차지하는 가정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다름 아닌 배우자다. 매년 100여 명 여성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동거를 하고 있거나 과거 동거했던 남자들이다. 한 때는 철썩 같이 믿었던 남성들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이 같이 어이없는 죽음을 막을 길은 없는가?

아마 지금 대다수의 여성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정신질환자 치료체제 구축에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 일이 아니라, 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폭력을 막아주는 정책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거했던 남자로부터의 위협, 의붓아버지로부터의 추행, 남편의 일상적인 폭행 등 당정은 이 대목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 의지를 아직 표명하지 않았다.

여성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4대악 근절은 정부의 국책과제가 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근절하겠다던 가정폭력과 성폭력 문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물론 문제의식이 높아지면 그전까지 외면하고 있던 사소한 범죄 사건들에 대한 신고율이 높아진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건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는 있다. 그러다보니 범죄에 관한 경각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등한데, 형사사법기관은 이런 사소한 폭력범죄들에 단호히 대응함으로써 여성들이 종국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꼭 개입·중단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다소 고무적인 통계치도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인데,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2011년도 한 해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은 223명이었던 데 비해 2012년도에는 218명, 2013년도에는 180명, 2014년도에는 191명으로 4대악 근절 조치 후 여성의 인명피해는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이런 감소추세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되나, 흉악범죄자에 대한 전자감독제도나 신상공개제도 등 보다 강력한 보안처분의 도입은 살인사건으로 희생되는 여성들의 숫자를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통계치는 현재의 형사정책의 기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임을 시사하는데, 이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상습적인 폭력행위를 조기에 근절할 법과 제도를 강력하게 운영한다면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 전수를 감소추세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체포우선주의 집행, 스토킹방지법의 도입, 그리고 랜덤 채팅을 통한 어린 여자아이들을 유인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제할 방안을 마련한다면 여성에 대한 폭력행위가 여성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데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4대악 근절을 위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고쳐 맬 때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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