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커피에 빠졌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주일에 커피를 평균 12회 마셔 배추김치(11회)와 쌀밥(7회)보다도 자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커피에 빠진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오직 커피를 사기 위함만은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카페를 찾고, 고달픈 취준생들은 수 십장의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스터디를 하기위해 카페 문을 연다. 지친 직장인들에게 카페는 포션(potion)을 챙겨 ‘HP’(Hit point·게임에서 케릭터가 데미지를 버텨낼 수 있는 체력)를 보충하는 곳으로 종종 비유된다.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다방은 커피와 함께 추억을 판다. 60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옛 다방을 찾아 오래된 문을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 학림다방

1965년 1월 수필가 전혜린이 생의 마지막 날 찾았던 곳, 바로 학림다방이었다. 죽기 전 그녀가 학림다방에 남긴 메모지에는 “나는 두렵다. 그리고 죽고싶지 않다. 생은 귀중하고 단 하나다. 그리고 나는 실컷 살지 못했다”고 적혀있었다고 전해진다.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학림다방은 6·25전쟁 직후인 1956년 옛 서울대 문리대 건너편에 문을 열었다. 서울대 문리대학 ‘제25강의실’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다녀간 것은 물론 전혜린을 비롯한 서울대 출신의 천상병, 김승옥, 이청준, 황지우 등 걸출한 문인들이 이곳을 아지트 삼아 시간을 보냈다.

올해로 60년째를 맞는 학림에는 예전처럼 문인과 예술인들이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지만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낡은 표지의 LP판 1천500여 장과 턴테이블, 손 때 묻은 소파가 연륜을 드러낸다.

학림은 카페가 즐비한 대학로에서도 커피가 맛있는 집으로 단연 손꼽힌다. 모든 커피는 직접 로스팅한 학림 블랜드로 만들어진다. 학림의 대표 메뉴인 ‘로얄 블랜드(Royal Bland)’는 서너 잔 분량의 원두를 한 잔의 물로 내린, 향과 맛이 진한 커피다. 거품 낸 우유를 섞은 커피 위에 설탕을 섞은 식물성 크림을 올려 달콤한 맛을 내는 ‘비엔나 커피’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복고 열풍을 일으키며 다시 학림의 인기 메뉴가 됐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하는 오래된 다방도 이 곳이다. 도민준(김수현)이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던 장변호사(김창완)를 종종 만나던 곳이다. 덕분에 도민준이 앉았던 창가 쪽 자리는 이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꼭 다녀가야 할 성지가 됐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4가 94-2

전화: 02-742-2877

# 삼양다방

전주 한옥마을 주변 경원동에 위치한 삼양다방은 경영난으로 인해 폐쇄됐다가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문을 연 삼양은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꼽힌다. 1960년대 삼양은 피난 온 영화감독, 배우, 문인과 음악 애호가들의 모임장소로, 1970년대에는 시민들의 데이트코스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50년대 영화인들의 아지트였던 다방을 기리고자 지난 2014년 삼양은 전주영화의 역사와 함께하는 생활문화유산공간 ‘삼양다방&전주영화소품창고’로 재탄생했다. 문지방(문화와 지역이 만나는 사랑방) 공방을 입점해 핸드메이드 창업·작업 공방, 지역 아트상품 판매, 영화소품 관람·체험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공간으로 지역예술인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소품창고에는 전주영화촬영소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시나리오와 대본, 소품, 핸드프린팅을 전시해 둘 뿐만 아니라 배우의 의상도 직접 입어볼 수 있도록 했다. 영화 ‘7번방의 선물’ ‘명량’ ‘은밀하게 위대하게’ ‘하모니’ ‘평양성’ 등의 소품과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맞춰 전주지역에서 촬영된 ‘도리화가’ ‘사도’ ‘마담뺑덕’ ‘상의원’ ‘타짜: 신의 손’ 등의 소품을 둘러볼 수 있다.

삼양에서는 둘둘둘(2:2:2), 둘셋둘(2:3:2)로 옛날 다방에서 냈던 그대로의 커피 ‘추억시리즈’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2천~3천 원 내로 저렴하다. 뿐만 아니라 70년대 계란 한 알이 귀하던 시절 최고의 인기메뉴였던 ‘모닝커피’는 커피에 노른자를 넣어 먹고, ‘에그’는 에스프레소나 밀크에 노른자를 한 입에 털어 먹는 메뉴다. 홍차에 위스키를 섞어 낸 ‘위스키 티’로 옛 다방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삼양이 추천하는 메뉴는 직접 내린 더치커피원액에 ‘산조인(묏대추씨)’을 냉압추출한 특허한방액을 더해 만들어낸 ‘전주커피’이다. 산조인은 기를 보하고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몸을 든든하게 하며 심신의 불안을 없애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크다.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94 (경원동2가)

전화: 063-231-2238

#흑백다방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인을 꿈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였던 흑백 다방이여

그 자리 그 색깔 그 향기로

사진첩의 속의 흑백 사진처럼 오래도록 남아있는

since 1955 흑백 다방,

진해시 대천동 2번지

정일근 시 ‘흑백 다방’ 中

‘진해 문화의 등대’라고 불리는 흑백다방은 1912년 세워진 일본식 목조건물이다. 흰색 간판과 검은색 출입문이 조화를 이루는 흑백은 진해의 유일한 클래식 다방으로 이중섭, 유치환, 김춘수, 서정주 등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인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로 지정·보호 중인 흑백다방은 1955년 ‘칼멘 다방’을 서양화가 유택렬이 인수해 까치의 이미지에서 따온 ‘흑백 다방’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예술적 공간이라곤 없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음악 감상회, 미술 전시회, 연주회, 시 낭송회, 연극 공연 등 진해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흑백의 다탁은 절구통이나 말 구유, 커다란 도자기에 유리판을 깐 것이 많다. 유택렬 화백 내외가 세상을 떠난 후 둘째 딸인 피아니스트 유경아가 유 화백의 작품과 고미술품 수집가였던 이경승 여사의 수집품을 보존·전시해왔다.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진해를 대표하는 서양화가 고故 유택렬 화백의 상설전시회가 열리는 흑백은 현재 다방을 폐업하고 ‘시민 문화 공간 흑백’으로 운영되고 있다.

벚꽃이 피면 사람들은 만개한 연분홍 벚꽃이 흩날리는 진해 군항제를 떠올리지만, 진해 사람들은 중원로터리 인근의 옛 다방, 흑백을 추억한다.

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앙동

박현민기자/mi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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