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세월호 침몰 당시 있었던 KBS보도국장과 이정현 홍보수석간 통화녹취록이 공개돼 아주 시끄럽다. 야당은 국회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오랫동안 단골메뉴였던 KBS지배구조개선 같은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통화내용이 정권의 언론장악 혹은 통제 행위인지 홍보수석의 일상적 언론관계 업무인지를 놓고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천박하기 그지없는 홍보수석의 표현들은 논외로 하기로 하자.

하지만 솔직히 이번 폭로가 그렇게 새삼스럽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다. 언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여소야대 국회가 개원되면 야당의 언론분야에 대한 공세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언론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 병폐들이 많기도 하지만 차기 대선이 2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문제는 정당들의 이해득실과 절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KBS뿐 아니라 애매한 성격의 MBC를 놓고도 여·야 충돌이 예상되고, 강한 보수성향을 가진 일부 여당의원들은 EBS문제도 제기할 기세다. 더구나 내년 3월에는 조선·동아·중앙일보가 소유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들에 대한 재승인 심사가 예정돼 있다. 출범초기부터 야당이 이 채널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공격해왔던 터라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언론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애증의 존재로서 발전해왔다. 18세기 후반 자유주의시대 권력 감시기구로 성장한 언론은 이후 역설적으로 권력의 도구로써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때문에 마지드 테라니언(Majid Terranian)같은 학자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국민이 국가를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중적 가설(Two Hypothesis of Communication Technology)’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언론의 자유문제는 기술문제가 아니라 정치권력과의 상호작용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의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1980년대까지 우리 언론은 정권의 국민통제도구였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화를 이끌었던 대통령들이 줄줄이 집권했던 1990년대 이후는 어떨까? 외형적으로는 국가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나 민주적 언론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신문·방송에 대한 규제들이 대폭 완화됐고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마치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분명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국민이 국가를 통제하는 가설에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결정짓는 다른 축인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언론은 여전히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해야 하는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독립을 외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대한 계산을 깔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야당이 KBS공영성 확보를 위해 제기하고 있는 ‘특별다수제’도 자신들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한 번도 언급조차 해 본적 없다. 도리어 당시 방송규제기구였던 방송위원회나 KBS이사구성에서 여당 추천비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었다.

지금 우리 언론은 오랜 정치적 질곡을 거치면서 왜곡이 중첩돼 석고처럼 굳어버린 듯하다. 여기에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들어서면서 모바일이나 인터넷 미디어들의 공세에 경제적으로도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낡은 언론관에 묶여 있는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개혁안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도리어 왜곡만 하나 더 덧붙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6년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가 70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언론자유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이유가 이러한 정치권,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 의식 때문은 아닌지 자성해 볼 일이다. 정치와 무관한 미디어정책들도 사업자들이나 정부관료들이 죄다 국회의원회관으로 몰고 가서 싸움판을 벌이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정치언론’의 나라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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