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이데올로기 충돌의 시대, 요절한 천재의 세상을 향한 몸부림

한국 근대서양화의 대표 화가 이중섭.

그는 고독하고 우수에 찬 예술혼, 아내와의 농염한 애정, 아들들과의 행복한 놀이, 티 없이 순진무구한 아이들과 낭만적인 무릉도원의 세계를 아로새긴 천재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중섭은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전쟁과 분단에 분노한 평화주의자요, 사랑에 가득한 민족혼의 화가이기도 했다.

악한 세력에 꿋꿋이 맞서는 절절한 민족혼과 애통해하는 이중섭의 시심이나 염원을 담은 '파파 이중섭'과 가짜화가 이중섭을 통해 진짜화가 이중섭의 삶을 되살리는 '가짜화가 이중섭'을 소개한다.

 

파파 이중섭│고정일│동서문화사│553페이지


사랑하라. 우리가 불행한 것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0세에 요절한 천재화가 이중섭.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그의 요절을 가슴 아파하고 그 미술에 대해 두터운 애착을 느끼며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예술과 사랑의 참뜻을 안 사람이자 그것을 실천해 이루려 몸부림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 예술과 삶으로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이가 있다. 우리의 감성을 움직이고 눈이 번쩍 뜨이게 할 만한 미덕과 품성을 지닌 사람. 그는 짧은 생애, 짧은 사랑, 짧은 작품 그러나 더없이 깊고 넓은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케 한다.

신이나 이성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전쟁과 이데올로기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이중섭은 인간을 사랑하고 미술을 사랑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 속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리면서도 혼을 더럽히지 않은, 바보스러우리만치 순수했던 사람이 바로 이중섭이었다.

이제 이중섭의 삶을 되짚고 그의 사랑과 천재의 진실을 찾는 일은 그를 기리고 그의 그림을 아끼는 모든 이의 숙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매혹된 혼 최승희’ ‘불굴혼 박정희’ 등 한국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작품에 평생을 바쳐 온 고산고정일의 ‘파파 이중섭’은 큰 한 걸음이 된다. 


가짜화가 이중섭│이재운│책이있는마을│304페이지

이재운 작가는 대학 시절 이중섭의 절친 구상 시인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대학원 조교로 있을 때는 구상 시인의 개인 심부름을 하고, 시인의 서재인 관수재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구상 시인은 화가 이중섭의 원산 친구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작가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6년, 소설 ‘가짜화가 이중섭’에서 이중섭의 신산했던 삶을 되살려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쓸 줄 알았다면 구상 시인에게 이중섭의 삶에 대해 자세히 여쭤봤을 거라며 못내 아쉬워했지만, 이허중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천재 화가 이중섭의 고단했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그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랜 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가짜화가’ 이허중은 이중섭이 청량리뇌병원에 입원해 있던 1956년 봄에 약 2개월 동안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청년 화가다.

이허중이 이중섭을 스승으로 모시면서부터 그에게는 이중섭이 겪은 것보다 더 큰 시련들이 잇따라 몰려오고 습작으로 그린 이중섭 그림 모사품이 야쿠자의 손에 넘어가면서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질곡 속으로 빠져든다.

실제 이중섭은 죽을 때까지 일본에 있는 처자식을 미친 듯이 그리워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만 퍼내고 퍼내다 지쳐 끝내 재회하지 못한 채 마흔한 살 나이에 덜컥 죽고 말았다. 그는 펜으로, 붓으로, 손톱으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 노력했지만 그림 위로 떨어져 내리는 그 무수한 절망과 덧없는 시간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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