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적 기관에 대한 불신은 42개 OECD 국가들 중에서 39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 역시 예외는 아닌데, 이는 꼭 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의 부당한 처사나 전관예우 등의 관행 때문에만 발생한 결과는 아니다. 법조인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이 또한 일조하였을 것인데, 최근 연이어 폭로되고 있는 전직 검사들의 스캔들은 한국 사회에서 법조인들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기에 충분하다.

본인과 가족이 저지른 다양한 불법과 탈법의 사례는 온 국민의 공분을 넘어 이제는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신뢰하기 힘든 검사들의 수사결과를, 그리고 이를 토대로 내린 재판 결과를 대체 어느 누가 정당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런 논란 속에서 헌법재판소는 소위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놓았다. 최근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두 명의 전직 검사들의 스캔들과 아주 대비되는 사건이다. 당장 두 달여 뒤부터 시행될 이 법은 공직사회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와 사회 일각에서는 이 법으로 인하여 농식품업이 위축될 것을 걱정할 정도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누구든지직무와 관련하여 부당한 청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금지하는 행위의 유형을 15개로 구체화 하여 명기하고 있어서 의심이 있을 때 감별할 기준이 존재한다. 일반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일들을 굳이 법으로 제정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인상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이 법의 좀더 세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사회에 많은 행동규범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대부분 학맥 인맥으로 형성이 되어 있다 보니, 다른 법들과 달리 이 법은 우리 생활에 유달리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진경준 전 검사도 대학 때의 친분관계가 모든 말썽의 씨앗이 되었으며 우병우 수석 역시 가족들의 아쉬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맥을 동원하던 버릇이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이들처럼 불법 편법의 형태로 거대한 금액을 세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도 스스로의 생활습관을 곰곰이 챙겨보면 부정청탁금지법에 의해 제재 받을 수 있는 많은 행위를 이미 저지르고 있다.

일단 교단에 서는 필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많은 행동에 제약이 발생한다. 물론 부정청탁금지법에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처벌요건에서 제외하기는 하였으나, 어울리는 사람들이 주로 제자인 대학원생들이다보니 언제든 청탁의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잦은 식사자리는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스승의 날 취업한 학생들이 들고 오는 선물의 수준에도 앞으로는 원가를 고려하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동창들 중 공무원이 된 친구나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된 공무원과의 모임에서도 앞으로는 식음료 가격대에 신경을 쓰게 될 것 같다. 간혹 기업체에 강연을 나갈 때 특강료의 상한선도 애써 챙겨보아야 할 것이다. 일백만원 이상의 특강료는 과태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곰곰 살피다보면 가장 불편을 야기할 것이 바로 학생들과의 관계이다. 단 한 번도 금품을 요구한 적이 없는 필자로서도 이번 부정청탁금지법은 일상적이던 생활의 많은 부분을 신경 쓰게 만든다. 선량한 소시민의 생활습관까지 바꾸게 하는 소위 김영란법이 대체 왜 필요하게 된 것인지 그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짜증스러운 점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수백억 수천억대의 부당이득을 취하는 극소수 공직자들의 기강해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평온했던 사제지간에까지 이토록 부적절한 의심의 빌미를 제공해야 하는 것인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점은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신뢰받는 ‘스승’이었던 필자가 이 법으로 인하여 부당한 청탁이나 요구하는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는 점이다.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부정청탁금지법의 취지에 동의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법조항을 지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 연유는 바로 이렇게 개개인이 조금씩만 노력한다면 국가의 쌀뒤주를 지키는 많은 공직자들도 보다 청렴하게 공직수행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당직자들의 경각심을 호소하고자 한다. 당신들의 도덕적인 해이는 온 사회를 불안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끔찍한 범죄를 반복하는 범죄자들을 만날 때마다, 법치라는 것이 매우 사소한 법조인들의 관행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음을 절감한다. 사소한 청탁도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될 때만이 소시민들이 안전하게 밤길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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