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딱 오늘 오후 3시다.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경찰의 학내 폭력 진압 사태에 대해 책임자인 최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이대 학생들이 못 박은 그 시한이다. 지난 주 중앙지 신문 1면에 커다란 대학광고가 걸렸다. 이대 졸업생들이 십시일반 한 것으로 보인 한 눈에 보기에도 그 광고비가 만만하지 않을 크기였다. 광고안의 얘기는 온통 이대 안의 진통에 관한 얘기였다. “이화여자대학교 졸업생은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신설안 폐지를 촉구합니다. 또한 학위를 이용한 대학의 상업화를 반대합니다.” “대화를 원하는 학생들의 평화시위에 경찰투입으로 응한 총장은 대화에 임하길 바랍니다.” 그 아래에는 깨알만한 졸업생들의 이름이 마치 수 십년전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지식인들의 갈망과도 같이 적혀 있었다. 난 이 광고를 보며 이쯤 되면 이대 총장은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겠다란 생각을 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엇이 아침 일찍부터 긴급 교무회의를 열게 해 학교의 뜻은 이미 결정됐고 후퇴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결연할 총장의 얘기를 뒤엎고 미래라이프대 설립 추진을 철회하기로 의결한 것일까. 멀리 떨어져 더구나 여자대학 안의 얘기들을 죄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일은 교육부가, 대학이 이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섰고 그 결과 전국의 대학에 이 영향이 파급될 일이 분명해 보인다는 점이다. 안쓰럽게도 머리숙인 최 총장과 대학은 앞으로 학교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태를 귀결 짓기에 이른다.

서울 한 구석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씁쓸함을 뒤로하고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만일 이대가 아니고 다른 여자대학이나 지방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1000명이 넘는 경찰병력이 단박에 출동을 하고 또 세간의 관심 대상이나 됐을까. 그리고 이렇게 쉽게 대학이 포기했을 까. 대답은 절대 아니다. 이대였기에 가능한 일이고 그 관심이 낳은 우리 사회의 민낮 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리 대학의 적폐를 고스란히 노출한 해프닝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학교로서 기존 입학 정원은 유지하면서 추가정원을 모집해 수입이 생기는 일에 그 달콤함을 어찌 뿌리칠 수 있었겠는가. 모르긴 해도 지방대학에서는 이런 부러운 일을 저렇게 마무리 하는 것을 보고 땅을 치고 있을 일이다. 고등교육의 기회 확대와 평생교육 사이클을 만든다는 국가 교육이념에 부합하는 모델을 안 하거나 못 하다니....

이대는 영화에서 김혜수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한 마디로 국내 명문사학임을 다시 한 번 모두의 뇌리에 심어준 그러니까 아직도 사회의 깊은 뿌리를 간직한 소위 명문 대학이다. 하지만 얘기의 끝은 이렇게 한 사학의 내부적인 얘기로만 끝날 수 는 없다. 분명 학벌 사회의 문제가 이번에 다시 야기시킨 일이다. 이대는 늘 여대의 서울대였다. 그래서 김혜수가 그렇게 우쭐한 것이었고 이를 사람들은 당연시했다. 실제로 이대 졸업이 사회진출에 큰 도움이 됐을 짐작도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이대 자존감이 다른 사람들의 교육기회 확장이 아닌 자신이 나오거나 다니는 학교의 학벌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들게 했을 일이다.

#장면 2

그 즈음 얘기는 달라도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를 나와 푸른 눈의 스님이라 불리던 현각은 우리 불교조계종단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서 쌀밥과 김치, 된장국으로 얘기를 꺼낸다. “조계종은 화계사 국제선원을 해체시키고… 열린 그 자리를 기복 종교로 만들었다”며... 물론 여기에서 기복은 무조건 돈 만 아는 사람이나 조직이다. 어쩌면 운 좋게도 현각은 자신이 불평한 대로 조계종의 장식품이었고 그 바람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날렸다. 그야말로 비판에 선 사람의 얘기대로 특별한 능력 없이 하버드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계종의 상위 1%에 속했던 사람이었다. 해서 25년 동안 조계종에 빨대만 꽂고서 가장 좋은 조건 속에 있었던 사람이란 비평을 들어도 싼지 모를 일이다. 얘기가 일파만파 되자 현각이나 조계종은 모두 한국 불교에 애정이 있어 한 말로 둘러댄다. 앞서 얘기한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학벌주의나 현각의 쓰디쓴 얘기들을 듣고 지켜보며 최고 브랜드의 대학에 관련된 자부심 혹은 은근한 지명도가 만든 결과가 아닌가 생각했다.

아마도 현각이 이대 시위현장에 갔다면 그 효과는 수 백배도 넘었을 것이다. 훤칠한 외모의 종교지도자라. 여자대학에 이런 사람이 뜨면 난리다. 더구나 그는 자신들과의 코드가 제법 맞아 보이는 사람 아닌가. 학생들이 말한 학교의 ‘학위장사’나 현각이 생각한 조계종의 기복 종교는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대학의 현실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쳐도 좋을 만큼 한가롭거나 넉넉하지 못하다. 학과 이름만 슬쩍 바꿔, 또 아예 학과 몇 개정도는 날려 보내 교육부의 입맛대로 구조개혁에 동참해야 하는 서글픈 상황이다. 대학들이 뭘 어떻게 하겠는가. 현각이 저런 얘기들을 불쑥 해 놓고 민망해 있을 처지나 대학들이 앞으로의 사태에 촉을 세우는 것 역시 다르지 않다. 대학들의 학위장사나 평생교육이 분리돼 이런 사단이 없어야 하듯 현각 역시 중 노릇을 제대로 하려 했으면 그 안에서 삼켜야 했다. 대개의 민망한 일들이 터지면 내장 썩는 냄새만 내고 시간이 지나 한 번 장맛비에 씻겨 내리면 잊혀 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러나 사퇴하라는 시한이 왜 하필 오늘 오후, 그것도 가장 더울 3시인지...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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