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동명·서열주의식 학교명 '일제 잔재 근거 부족' 입모아
"다얗안 복합적 작명 요소 고려...공청회 등으로 신중히 결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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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이 일제식민지 잔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학교명 개명 프로젝트('학교명을 부탁해')와 관련, '일제 잔재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개진되는 등 또 다른 논란이 일고있다.

도교육청이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역사 관련 전문가들은 기존의 학교명이 일제 잔재라는 근거가 부족하다, 일제 잔재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도교육청이 일제 잔재로 보고있는 동서남북 등 방위명, 행정동명 등이 사용된 학교명 상당수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존재한 방식이기에 일재잔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방위를 붙이는 작명방식은 동아시아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 전인 조선시대에도 성 이름을 지을 때 '동성', '서성', '북성' 등으로 명명했다"며 "이뿐 아니라 기존의 명칭이 있지만 이를 한자어로 바꿔 붙이는 사례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방식이다. 해방 이후에도 이같은 작명방식이 지속됐기 때문에 일제의 잔재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일', '중앙' 등 서열주의식 작명법은 일제 잔재로 인정될 수 있으나 우리나라 학교명에 '제일', '중앙' 등의 단어가 사용된 시기를 세심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학교명 교체에 있어 신중해야 할 것 등을 조언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일본식 서열주의 작명법은 분명히 존재 했으나 우리나라에서 학교명이 변경된 사례를 일제의 잔재로 못 박기는 어렵다"며 "예를 들어 목포상고의 경우 목포제일고로 변경됐듯 서열을 위한 개명이 아닌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해득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행정동명을 이용한 작명법을 일제의 잔재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조선시대 부터 지명이나 향촌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교육기관들이 존재한다고 부연했다.

정 교수는 "행정동명을 활용한 작명법이 일제의 잔재라고 치부하는 논리는 해괴하다"며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방위에서 따 온 면(面) 이름이 많이 있었다. 경기도립도서관에 소장된 '해동지도'가 근거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명이 일제식이라 해도 친일의 잣대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대다수의 초·중·고등학교는 해방 후에 세워진 곳이 많다. 학교명이 지어진 경위를 꼭 친일의 잣대로만 볼 수 없다. 공청회 등을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준영 한국역사문화연구소장은 학교명이 지어진 배경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일제가 방위작명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이것만으로 일제의 잔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양한 복합적 작명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향토문화 학자들의 소견과 역사적 문헌, 인터넷 자료 등을 참고해 방위작명법 등이 일제의 잔재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심층적인 역사적 고증을 통해 일제의 잔재 여부를 검토하겠다. 학교명의 개명을 원하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학교명의 유래를 파악할 수 있는 주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해명했다.

신병근기자/bgs@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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