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더위에 사람들은 기진맥진하고 있지만, 그래도 들판의 작물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매주말 이른 아침,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당수동 시민농장에 가는 것이 주요 일과가 된지도 꽤 된 것 같다(수원시는 당수동, 고색동, 천천동 3개 지역에 약 10만평의 시민농장을 조성하고, 2000여명의 시민들에게 텃밭을 제공하고 있다). 작년 봄부터 주말 농부가 된 것이다. 약 16㎡ 정도의 작은 텃밭에 감자, 고추, 상추, 강낭콩, 아욱, 배추 등을 조금씩 심고, 가꾸는데 그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매주마다 보게 되는 작물들은 매번 내 상상을 앞지른다. 어쩌면 그렇게 쑥쑥 크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주말농장의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하기 위해 이웃에게 수원시민농장 텃밭을 가꾸어 볼 것을 권해보았다. 어디에 있느냐고 해서 당수동에 있다고 했더니, 너무 멀어 매주 가려면 기름 값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뜨악해 한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텃밭에서 얻는 가치는 얼마나 되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마도 필자의 텃밭에서 거두는 작물의 시장가치를 매긴다면, 잘 쳐주어도 몇 만원을 넘지 못할 것 같다. 시민농장 텃밭은 친환경 유기농 재배법을 사용하므로 건강한 먹거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작물로서의 시장성은 아무래도 글쎄다. 상추는 시장에서 사는 것처럼 부드럽지 않은 것 같고, 고추, 감자 등도 시장에 내 놓을 정도의 균질한 상품성을 수확할 자신도 별로 없다. 필자가 살고 있는 조원동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가게 되는 시민농장까지의 왕복시간, 연료비 등을 감안하면, 시장가치로는 분명 남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먹거리를 내손으로 재배하고, 그 작물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살펴보는 즐거움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나. 시장에서 사왔다가 남은 채소는 쉽게 버리면서도 주말농장에서 따온 채소는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어, 남는 것은 어떻게든지 이웃들과 나누려고 한다. 분명 그 가치가 다른 것 같다. 주말농장에서 도시농부들과의 만남도 즐겁다. 작물을 키우면서 알게 된 작은 정보와 경험들, 작물이 커가는 모습들, 일상의 자잘한 주제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다. 또 하나의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언제부턴가 주말농장은 내 생활의 중심리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매주 기다려지는 일상적인 즐거움, 설렘이 생긴 것이다. 생동감 있는 자연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도 가볍지 않은 보너스 같다.

그러고 보니, 살아가면서 대하는 유무형의 자산을 시장가치로 바꿔 생각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시장가격으로 나타낼 수 없거나, 환산하기 어려운 것은 평가절하 하거나 무시해 버리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시장의 힘이 점점 더 사회적, 정치적 삶을 좌우해 오고 있고, 숫자가 그 힘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로렌조 피오라몬티가 ‘숫자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 하는가’에서 “숫자는 인간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복잡한 사회의 현상을 은근히 단순화하고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이중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측정이 과도해지면 사회적 관계와 대자연 자체가 상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 것은 깊게 곱씹어 보아야 할 경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상에서 반성해 보아야 할 것들이 꽤나 되는 것 같다. 친구관계나 인간됨됨이 보다 자녀에게 학교성적을 더 강조하는 것 등. 석학 마이클 샌델(‘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저자)의 지적처럼, 사랑, 정의, 공존, 우정 등 일상생활에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정말 중요한 가치는 화폐단위로 환산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초보 텃밭농부인 필자가 시민농장의 가치를 상세히 설명하기는 벅차지만, 시민농장에서 얻은 이러한 작은 깨달음만으로도 시간적, 경제적 비용은 모두 상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주말부터는 선선해진다고 하니, 가까운 시민농장에 들러 자연과 사람의 공존의 가치를 음미하고, 시장가치에 경도되어 가는 우리의 모습도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동근 수원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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