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임직원들은 이 부회장의 평소 온화했던 성정(性情)과 사고 바로 전날까지 평범하게 행동한 것 등에 비춰 그의 극단적 마지막 선택을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롯데 정책본부 직원은 26일 "순간의 감정에 크게 흔들리는 법이 없는, 항상 합리적이고 온화한 분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하며 "더구나 독실한 크리스천(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자살 보도를 봤을 때 '오보'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소환을 하루 앞둔 25일 평소와 다름없이 호텔롯데에서 운동을 마치고 오전 9시 서울 소공동 롯데 본사 집무실로 출근해 정상 업무를 봤다. 검찰 출석에 대비, 그는 오후까지 변호인단과의 회의에도 참석했으나 이때까지도 주위 롯데 임직원들이나 변호인단 모두 특이한 동향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뜻밖의 자살 소식을 접한 롯데 관계자들 가운데 다수는 가장 먼저 이 부회장이 최근 1년간 롯데맨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점을지목했다.
이인원 부회장은 1973년 롯데호텔 입사 후 롯데쇼핑 대표(1997년), 정책본부장 사장(2007년), 정책본부장 부회장(2011년)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40여년간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과 차세대 신동빈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이 부회장은 롯데 그룹 역사에서 오너가(家) 일원을 제외하고 순수 전문경영인으로서 '부회장' 직함까지 단 유일무이한 첫 인물이었고, 신격호 총괄회장이나 신동빈 회장이 일본을 오가며 이른바 '셔틀 경영'을 할 때 국내 경영을 도맡아 처리한 명실살부한 그룹의 '2인자'였다.
'롯데의 산 역사'였던 만큼 롯데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라 지난해 이후 경영권 분쟁과 비자금 의혹 수사 등으로 그룹이 큰 곤란을 겪자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다는 게 롯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롯데 임원은 "수십년간 모셔온 신격호 총괄회장이 경영권 분쟁 와중에 곤욕을 치르고, 자신과 신 총괄회장이 어려운 시절 일본으로부터 투자금을 끌어와 일으킨 한국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는 조롱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고통스러워했다"며 "여기에 비자금 의혹까지 더해지자 심리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한계에 이른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 발발 직후 일각에서 떠돌았던 "신격호 총괄회장 사람이 신동빈 회장 편으로 줄을 갈아탔다"는 비아냥에도 그는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알려졌다.
총수를 제외하고 그룹 경영에 가장 넓게, 깊숙이 간여한 최고 전문경영인이었기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롯데그룹 사태'를 보며 "죽음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롯데 관계자는 "실제 비리 유무나 비리 주체는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로 가려지겠지만, 어쨌거나 수사 과정에서 수많은 의혹이 제기돼 그룹 이미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인 만큼 이 부회장이 '총체적 책임'에 대한 압박을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자살 직전 남긴 유서에서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적었다. 끝까지 그룹의 '결백'을 주장하고 오너 총수를 옹호한 셈이다.
물론 이런 이 부회장의 극단적 행동을 '은폐', '검찰수사 방해'를 위한 것으로 의심하는 일각의 시각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롯데 관련 의혹이 사실에 가깝다고 믿는 사람들은 검찰수사가 진전되고 그룹 윗선으로 수사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부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감행했다는 분석을 인터넷과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내놓으면서 검찰에게 오히려 '중단없는 더 강한 수사'를 주문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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