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토박이 설동춘씨…헌 자전거 고쳐 저소득층에 기부

7년간 동네를 누비며 헌 자전거를 고쳐 저소득층에 나눠주던 '자전거 천사'가 21일 세상을 떠났다.

28일 서울 중구에 따르면 주인공은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장을 지낸 고(故) 설동춘씨다.

설씨는 중구에서 태어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 '토박이'다. 그는 스무 살 때 정보기관의 말을 듣고 군에 입대했다. 강원도에서 '죽을 만큼' 힘들게 훈련받고, 북한도 오가며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1976년 제대한 그는 여느 북파공작원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장을 잡기 어려웠다. '중동 붐'이 일자 바다를 건널까도 생각했지만, 당국이 허락하지 않았다.

설씨는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를 만들어 청소년 선도 봉사도 하고, 틈날 때마다 마을에 보탬이 되려 했다.

그러던 가운데 설씨가 떠올린 아이템이 '자전거'였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자전거를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주면 마을 주민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설씨는 일주일 내내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고물을 내다 팔았고, 그 돈으로 자전거 부품을 사들였다. 길가에 내버려진 고장 난 자전거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는 2009년 7월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처음으로 150대의 자전거를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이후 구내 중고등학교, 어린이집, 노인회, 중부시장 상인연합회 등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을 곳곳에 '아저씨 표 자전거'를 실어 날랐다.

중구는 이 같은 그의 노력을 돕고자 2010년 10월 을지로4가에 '자전거 무료이용 수리센터'를 열어 10명의 기술자를 상주시켰다. 2011년부터는 예산도 지원해 고물을 모으러 돌아다닐 필요가 없도록 했다.

구청측은 "설씨가 기증한 자전거는 지금까지 총 2천여 대에 달한다"며 "이는 한 대당 15만원씩 쳐도 총 3억원에 달하는 양"이라고 소개했다.

설씨는 5년 전부터 식도암 판정을 받고 고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전거 무료이용 수리센터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몸 상태가 나빠져, 올해 7월 120대를 전달한 행사가 마지막 자리가 됐다.

설씨는 생전 "기증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며 "병과 싸워 다시 일어나 자전거를 수리해 이웃 주민에게 기증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설씨는 겉모습은 곰 같아도 마음은 소녀 같은 분이었다"며 "자전거로 사랑을 전달한 그의 뜻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


▲ 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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