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임이 확정된 정재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부족한 재정에 도움을 받기 위해 영입한 비상근 이사들이 김영란법 적용 범주에 포함되자 집단 사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정 사장은 “삼고초려하다시피 해서 기업인을 모셔와서 이사회를 꾸렸고,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는데 김영란법 때문에 고민스럽다”면서 “대기업 임원급이 도문화의전당 이사직 때문에 밥값에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 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의 경우처럼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다음달 28일 전후로 경기지역 지방정부와 산하 공공기관, 각종 단체 등에 속한 비상임 임원과 위원 등이 집단 사퇴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방정부가 설치한 각종 위원회 소속 위원 및 고문·자문위원, 지방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비상임 이사, 지방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은 각종 단체 임직원 등이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자 집단 사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 한 관계자는 28일 “대학 교수를 제외하고는 비상근 이사 대부분이 변호사, 전직 고위 관료 등 민간인인데 고작 월 100만 원에 불과한 수당을 받으려고 김영란법의 감시를 받으려 하겠느냐”면서 “법 시행 전후에 대부분 사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관계자는 “경기도 예산 지원을 받는 단체 임직원이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포함될 경우 사단법인 DMZ국제다큐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영화배우 조재현씨도 잠재적 범죄자에 포함될 수 있다”면서 “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영화인과 3만 원 이상 식사를 해도 법 위반 소지가 높아보이는데, 내가 조재현씨 입장이라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영화제를 이끌어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기도 관계자도 “경기도 고문변호사 대부분은 김영란법에서 자유로운 변호사인데, 법 적용을 받게 되면 고문변호사직을 맡으려고 할 것 같지 않다”고 예상했다.

민간 전문가들의 집단 사퇴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경우 경기지역 지방정부들은 각종 위원회를 꾸리고 운영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의 경우 현재 181개 위원회가 운영중인데 이중 2천736명이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 산하 24개 공공기관 이사회에 포함된 민간인 357명까지 포함할 경우 3천여명이 김영란법의 제재를 받게 된다.

복수의 경기도 관계자는 “시행령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법 취지만 놓고 보면 자문단조차 꾸리기 힘들 것 같다”면서 “지방행정과 관련이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현직 공무원, 지방의원, 대학교수가 독식하는 일이 벌이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복진기자/bok@joongboo.com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