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히는 기상관측 이래 손에 꼽을만한 더위가 한풀 꺾였다.

그 동안 더위로 인해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런 더위에도 중구 주민들은 6.25 당시 우리나라와 지역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지난달 극장에서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을 많이들 관람했다.

이미 6백만 명 이상 관람했다 하니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알만하다.

비록 6.25 전쟁시절을 겪지는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서 6.25사변의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X-ray부대, 캘로부대의 맹활약과 UN군의 도움으로 5천분의 1이라는 성공이 희박한 상륙작전을 훌륭하게 성공시킴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인천 월미도의 아픔이 있다. 월미도의 주민들 100여명 이상이 상륙작전 과정 중 돌아가신 것이다. 1950년 9월 10일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뒤집으려 했던 미군이 해병 폭격기를 동원, 총 43톤(95개)의 네이팜탄으로 월미도를 무차별 폭격한 사건이다. 미군 측 항공공격보고서(제214, 323 해병전투비행대대 보고서) 자료에 의하면, 월미도 동쪽지역을 ‘철저히 집중폭격’하고, 건물·숲·민간인 거주지역 등 ‘모든 시설을 불태워 전소’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월미도 미군폭격 사건’은 당시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작전상 전략적 위치에 있던 월미도를 미군 전폭기를 이용, 네이팜탄으로 집중폭격하고 무차별 기총소사 함으로써 100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제노사이드(Genocide)’ 사건으로 밝혀졌다. 위원회는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가 협의해 무고한 희생자와 쫓겨난 월미도 원주민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인천시와 중구에서는 희생자 후손들에게 위령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매년 월미도에서 거행되는 9.15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행사에서 이 분들을 기리기 위한 보고나 추도는 거행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역사의 공과 실을 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성공적으로 역전시켰다면 이를 위해 희생된 고귀한 월미도의 주민들이 계셨다는 것 또한 꼭 알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우리 중구 의원들은 승전식 거행 전 추도 묵념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이 먼저가신 월미도 주민들과 그의 후손들에게 조금의 위로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생각에 이 글을 적어본다.

이정재 인천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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