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월초 해외순방에 나선다. 대통령의 순방은 어느때 보다 주목받고 있다. 순방국이 러시아(동방경제포럼), 중국(G20 정상회의) 등인 까닭이다. 사드배치, 북핵 저지 등 최대 현안 논의가 핵심이다. 외교력이 절실한 시점에 이뤄지는 순방인 셈이다.

러시아, 중국은 사드배치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있다. 사드배치 반대입장으로 뭉친 중·러는 안보 명분으로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두 나라의 공조는 미국 견제가 배경이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가 세계적 통제망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는 속내다. 미국이 한반도를 시작으로 방어체계 세(勢)를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 중·러의 논리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간 세(勢) 싸움은 본격화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푸틴, 시진핑을 상대로 설득외교(사드에 대한)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양보 없는 세 싸움에서 ‘사드는 북한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정부의 기조(基調)가 먹혀들지가 관건이다. 이번 G20 정상회의 등에서 만날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북핵 공조 강화, 경고 메시지를 함께 던져줄 것 등을 부탁해야 한다. 미·중·러 사이에서의 설득, 부탁, 해명…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사드배치 결정을 둘러싸고 또 다시 요동(搖動) 치고 있다. 미국에 맞서 맹주(盟主)로 등장한 중국. 미국과의 이해관계에 있어 중국과 손잡은 러시아.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일본. 일본의 손을 잡아주는 미국.이들 열강 틈바구니의 대한민국… 이같은 격동에 대한민국의 조정(朝廷)은 어떤가. 사드배치에 대한 미국, 중국의 양보없는 게임에 놀아나고 있다. 친미파, 친중파로 분열되는 프레임을 보이고 있다. 구한말의 정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구한말의 고종과 명성황후, 대원군 등은 대외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지 못했다. 롤러코스터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주요인사들은 친일, 친청, 친러 등으로 사분오열 됐다. 이는 결국 일본 식민지가 도래한 토대가 됐다.

구한말, 한반도는 지금처럼 주변국 충돌의 중심에서 흔들렸다. 열강들의 세력균형을 위한 전쟁터였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정세속에 지금처럼 ‘눈치’는 필연(必然)이었다. 열강들은 바다와 대륙을 낀 한반도의 특수성 때문에 특정 세력의 독점을 용납치 않았다. 사드를 둘러싼 지금의 정세와 판박이다. 구한말,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했다. 이를 위해 일본과 유대했다. 지금은 견제 대상이 중국으로만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과 손을 잡는 패턴은 지금과 같다. 미국은 현재 중국과 대립하며 한미일 협력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열강의 세력균형을 위한 움직임에 대한민국은 구한말처럼 갇혀있는 형국이다. 사드배치 이슈를 국내외에 공론화 하지 못했다. 중요한 협상카드로 활용치 못했다. 중국이 반대하지 못할 명분을 제시할 기회도 날렸다.

최근 구한말 비운의 역사를 기록한 한장의 그림이 세간(世間)에 공개됐다. 지난 7일 김현식 월간태백 발행인이 공개한 그림은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쁘띠 파리지앤(Le Petit Parisien)’의 1905년 10월 8일자 1면에 실려 있는 삽화다. 서양의 한 여성이 환영인파 속에 호위를 받으며 가마를 타고 행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림 속 주인공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다. 앨리스 루스벨트가 고종황제를 알현하러 가는 길이 묘사돼 있다. 이 시기는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때다. 당시 고종황제 입장에서는 일행의 방문이 가뭄의 단비였다. 일제로부터 조선의 국권을 지켜내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앨리스 루스벨트 일행은 왕실로 부터 국빈급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훗날 왕실의 어리석음은 회자되고 있다. 이들 일행과 함께 미국을 떠나 아시아순방에 나섰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장관은 이미 두달전 일본을 방문,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을사늑약’의 빌미가 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사실을 왕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열강은 이렇다. 앞뒤가 다를 수 있다. 돌변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친한정책으로 일관한 중국은 사드를 두고 돌변했다.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시선을 무릅쓰고 천안문 망루에 오른 박 대통령의 친중 행보는 안중에 없다. 미국도 구한말의 패턴과 다르지 않다. 일본에 집단자위권을 주고 한국을 미일 동맹의 하부세력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사드배치에 대한 셈은 어렵다. 답을 찾기에 쉽지않다. 답안지를 작성하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시점이다. ‘사분오열’된 구한말의 과오(過誤),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동규 사회부장/dk7fly@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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