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아픔 위에…신앙으로 쌓아올린 역사

근대문화유산 중 종교건축이야말로 건축과 미술의 유형과 신앙이라는 무형이 종합적으로 녹아있는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명동성당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간과 장소가 한꺼번에 기억되는 소중한 자산이며 그 자체가 근대의 역사와 함께 인식되고 있다.

수원에는 일제강점기 1932년 파리외방전교회 심뽈리 신부가 9년 만에 건립한 수원성당이 있었다. 수원성지 내에 건립됐던 이 성당은 6·25전쟁을 겪으며 건물 일부가 폭격을 맞아 수리를 했으나, 지속적으로 상태가 악화돼 1978년 3월 벽돌로 지어진 아름다운 고딕 성당은 헐려 자취를 감췄다. 현재 수원화성과 행궁 영역에 남아있었더라면 풍성한 도시와 건축 유산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 사라진 성당도 있지만, 수십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도 많이 남아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중 건축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 성당 건축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2004년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의 종교시설은 85개, 이 중 천주교 관련 시설은 19개로 조사 됐다. 19개 중에는 성당의 부속시설과 공소 등이 포함돼 있다.

▲ 안성 구포동 성당

새로운 자리에서 변화를 거듭한 안성 구포동 성당

근대문화유산 제도가 도입되는 시기인 2000년 이전에 문화재가 된 성당으로 안성의 구포동 성당이 있다. 안성은 천주교수원교구에 소속된 지역으로, 안성구포동성당은 1985년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됐다.

이 성당은 대한제국 광무 5년인 1901년 프랑스 신부 꽁베르(한국이름 공안국)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 현재 구포동에 있는 성당은 1901년 안성시 보개면 신안리에 있었던 동안강당(東安講堂)의 목재와 기와 일부를 활용해 1922년 지금 위치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성당 내부를 보면, 입구는 서쪽, 제단은 동쪽 끝에 위치한 장방형 평면으로 서양식 성당의 공간구조와 유사하며 내부 장식이 서양식으로 돼 있다. 성당 내부의 상층부에는 제대 상부를 제외한 삼면에 회랑과 난간이 설치돼 있고 채광을 위한 고창이 있는 점이 특징이며 측면의 상하부 창은 모두 사각형이다.

서양식 평면과 장식을 가지고 있지만, 구조는 목조기둥과 보를 짜맞춰 지붕에는 서까래가 있고 기와가 올려져 있다. 1922년 일부 부재를 옮겨와 새로 짓기는 했으나, 가톨릭 성당을 짓기 시작하던 초기 단계의 건축을 보여주는 예로, 양식과 한식이 절충돼 있다. 1955년에는 건물 전면 입구와 종탑부를 로마네스크 풍의 벽돌 성당건축으로 고쳐서, 성당의 정면만을 바라보고 들어가면 제대 방면으로 기와가 얹혀진 건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다.

현재 성당 권역에는 본 성당의 앞으로 중앙광장을 두고 주변으로 100주년 기념 성당, 로고스탑, 유물전시관과 수녀원·유치원이 배치돼 있다. 옛 성당과 새로운 성당, 천주교와 성당의 역사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 의정부2동 성당.

미군의 지원과 석공의 솜씨로 지어진 의정부2동 성당

의정부 성당은 양주군 광적면 우고리와 연천군 남면 신암리 일대에 형성된 교우촌을 중심으로 1927년 개성본당의 신암리공소의 본당 승격과 1934년 덕정리본당 완공을 기해 시작을 알렸다. 1945년 덕정리에서 의정부리로 성당 소재지를 옮기면서 당시 대지 5천371.9㎡(1천625평)과 82.6㎡(25평) 규모의 한옥 1동을 매입해 고쳐 임시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고 만다.

지금의 성당은 1953년 이계광(요한) 신부가 당시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주한 미1군단의 군종 신부인 로제스키 신부의 협조를 통해 미1군단 천주교 신자의 헌금을 지원받아 건립했다. 이 사실은 성당의 종탑 아래 입구 오른쪽에 걸려있는 명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의정부2동 성당은 석조 건축물이다. 조적조 외벽의 경우 대부분 적벽돌이 사용됐으나 6·25전쟁을 전후해 화강석을 사용한 예가 있다. 의정부2동성당의 경우 공사비에서 적벽돌보다 더 저렴한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당은 회천면 덕정리 돌산에서 가져온 돌을 의정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석공들이 참여해 지었는데, 이 시기에 지어진 양주군청사에서도 석재의 크기나 다듬기 등에서 동일한 가공 방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54년 미국의 원조로 건립됐던 양주군청사도 신청사를 건립하면서 철거가 됐고 그 정초석만이 현 군청사 광장 한 켠에 남아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1950년대를 전후한 시기의 성당 건축은 내부의 열주가 사라지고 수직과 수평의 분절되는 형식이 약해지고 일제강점기보다 훨씬 단순한 형태를 띄게 되는 반면, 외관 특히 종탑과 정면의 양식적 형태와 세부 장식 등은 유지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의정부2동성당은 이러한 시대적, 건축적 특징을 높게 인정받아 2001년 1월22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됐다. 2004년 서울관구에 경기도 북부지역을 관할하는 의정부교구가 설립됐고 의정부2동성당은 경기 북부권에서도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성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구 포천성당.

옛 공간을 기억하는 유적, 구 포천성당

경기북부 포천시에 시가지와 포천천을 내려다보는 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구 포천성당은 2006년 9월19일에 등록문화재 제271호로 등록됐다.

이 성당은 1955년 무렵 육군6군단이 지었다. 성당은 석조로 지어졌으나, 1990년 화재로 인해 마루바닥과 지붕틀 등 목재가 사용된 부분이 소실됐다. 성당을 돌아보면 종탑과 벽체, 화재로 타고 남은 창틀도 일부 남아있어 전체적으로 오래된 건물 유적을 보는 듯 하다.

6·25전쟁 직후에 지어진 석조 성당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종탑부와 윗부분이 뾰족한 아치 형태의 창문을 볼 수 있고 단일한 공간으로 구성된 강당형 평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건축 측면 외부에 구조적 안전을 위해 화강석을 비스듬히 올려 쌓은 조적 구법의 모습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6·25전쟁 이후 많은 교회 건물이 석조로 세워졌지만 구 포천성당은 군부대가 직접 세운 것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가치가 높다. 현재는 새로 지어진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으며 마당 주변의 사제관도 시간의 흔적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한옥과 변천의 기록, 고양 행주성당

고양 행주성당은 고양시 덕양구의 행주산성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과 그를 가로지르는 행주대교가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성당은 서울과 경기북부 지역의 약현성당과 명동성당 다음에 지어진 성당으로 고양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이다. 1910년에 처음 지어졌고 최초 지어진 장소에서 1928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상량 목부재를 포함해 당시 사용했던 기초 부재를 대부분 재활용했다. 안성 구포동 성당도 일부 한식 목구조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성당은 전체가 한옥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성당의 주 출입구는 팔작지붕, 제대 쪽은 맞배지붕으로 돼 있어 양쪽의 한옥 지붕 형태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성당의 건립과 관련된 기록인 상량 묵서도 남아 있어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옥 성당과 기록이 잘 남아있어 이 성당은 2010년 2월19일 등록문화재 제455호로 등록됐다. 현재의 행주성당은 처음 지어진 후 벽돌벽과 시멘트기와 등으로 변형되고 노후화된 것을 1950년대의 사진 등 옛 모습을 참고해 2015년에 보수를 했다. 행주산성 주변 상업지역과 조금 떨어져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에 자리한 순례지로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 김포 성당
신자들과 군의 노력으로 지어진 김포성당

한강 하구와 인접한 김포의 얕은 언덕위에 지어진 김포성당은 걸포리 공소로 시작, 8·15 광복 후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1946년 본당으로 승격되고 1년 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인천교구 소속의 이 성당은 제3대 신원식 루카 주임신부와 교우들의 헌신적인 노력, 당시 마송에 주둔해 있던 해병대의 군장비 지원으로 1956년 12월17일 봉헌식을 가졌다.

이 성당은 6·25전쟁 후의 석조 건축물로 정면 중앙상부의 종탑과 뾰족한 아치형태의 창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입구는 둥근 아치형태가 삼면에 나 있고 건물 양측면에는 부출입구가 돌출된 라틴십자형의 평면형식을 하고 있다. 중앙상부의 종탑 상부는 인천의 답동성당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구 포천성당과 마찬가지로 6·25전쟁 직후에 건축된 석조 성당의 전형적인 의장적 특징과 공간적 특징, 화강석 구조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1950년대 건물로 건축적 가치가 높아 2013년 4월18일 등록문화재 제542호가 됐다.

새로운 성당이 지어지고 주변으로 묵상을 위한 동산과 정원이 잘 조성돼 있다. 새 성당 위쪽에 남아있는 김포성당에 올라가면 한강과 신도시가 지어지고 있는 김포 전역이 내려다 보인다.



기록의 역사

경기도의 주요한 성당 건축을 살펴봤다. 6·25전쟁 이후 어려운 여건에서도 신자들과 군의 도움으로 지어진 성당들은 주변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도 언덕 위 그 자리에 위치해 있다. 오래된 한옥의 원형을 추적하려는 노력과 함께, 한식과 양식이 결합돼 끊임없이 사용되는 공간으로서 변천의 역사가 함께 남아 있다.

이번 회에 소개하지 못했지만 의왕시의 하우현 성당과 사제관, 성 라자로 성당은 각각 교우촌, 의료복지와 자활시설의 형성과 함께 터와 건축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1960년대 이후에도 곳곳에 건축가의 손길이 더해져 지어진 성당들도 근현대의 기록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최호진 건축도시 연구활동집단 지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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