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아닌데 소송·민원에 고통...여교사 사생활 침해 주장도

2010년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 제정 이후 촉발된 교권 추락 논란이 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으로 확산될 위기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경기지역 모든 어린이집의 CCTV설치가 의무화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일부 학부모들이 이를 악용해 어린이집 교사의 교권을 침해하고 있어서다.

일부 학부모들이 CCTV 영상을 근거로 형사소송을 제기, 패소했는데도 불구하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어린이집 교사들이 사직하거나 교권을 포기하고 있다. 교권 포기로 인한 다른 아동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학부모 CCTV 영상 확보해 무리한 합의금 요구=일부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아동학대 형사고발후 소송에서 패소했는데도 관리사무소 등을 동원해 보상금을 요구하고 있다.

고양시 한 어린이집 학부모 B씨는 올 중순 아들 A(만2세)군이 아동학대를 당했다며 어린이집 교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CCTV에는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는 아이의 고개를 교사가 자기 쪽으로 돌리는 영상이 담겨있다. B씨는 아동학대로 고발했고 최근 법원은 교육 행동의 일환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B씨는 최근 관리사무소에 이 어린이집이 아동학대를 계속하고 있다고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했고, 관리사무소는 오는 11월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어린이집에게 재계약하려면 B씨에게 합의금 100만 원을 주라고 통보했다.

이 어린이집 관계자는 “학대도 아닌데 소송과 민원, 소문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교사들도 스트레스를 받아 퇴직하거나 의욕을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아동학대 패소 이후에도 악의적 소문을 퍼트려 어린이집 운영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남양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D씨는 E(만1세)군이 옷에 소변을 보는 실수를 하자 화장실 변기에 앉힌 뒤 여벌옷을 챙기러 갔다. 혼자 남은 E군은 장난을 치다 변기 옆 세면대에 얼굴을 부딪혀 얼굴에 멍이 생겼다. 다음날 자초지종을 들은 학부모는 이해를 하고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이 학부모는 관련 CCTV 공개를 요구했고, 혼자 둔 것은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라며 치료비와 손해배상으로 600만 원을 요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어린이집 교사를 무혐의 판결했지만, 이 어린이집은 아동학대 소문이 퍼지면서 원아 모집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빗발치는 CCTV 영상 공개…전문가 “대안 마련 시급” =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는 무분별한 CCTV 공개가 인권 및 교권 침해로 인한 타 학생의 교육권을 침해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행여 생채기 하나라도 생길 경우 학부모들이 CCTV 공개부터 요구를 하거나 경찰에 신고를 한다”면서 “교사들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잡는 것 조차 두려워 해 보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타 아이들도 제대로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실, 유희실(거실)과 복도 등 전 지역에 CCTV가 설치돼 있어 선생님들 대부분이 여자들인데 옷도 화장실에서만 갈아입는 등 사생활을 침해받고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CCTV 영상 공개를 원칙적으로는 금지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학부모의 요청으로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심의를 통과하거나 경찰이 요구했을 경우에만 공개할 수 있지만, 정부나 시·군 공무원이 안전점검 등을 이유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어린이집 원장은 “경찰조차 아동학대가 없다면 당당히 공개하라고 할 정도로 CCTV 영상 공개를 단순하게 생각한다”면서 “영상에 기록된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인권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CCTV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제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환옥 경복대 영유아보육과 교수는 “CCTV는 감시용이 아니라 예방용·교육용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범인을 잡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 입장에서 스스로 조심하자는 차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아동학대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사회적 관심이 커지자 학부모의 권리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면서 “CCTV 설치 후 발생하는 악용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김익균 협성대 아동보육과 교수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합의금이나 보상을 주장한다면 오히려 신고자(학부모)가 불이익을 받게끔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면서 “CCTV를 악용하지 않도록 학부모들에 대한 소정의 교육이나 안내지침 마련, 대국민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복진·오정인기자/bok@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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