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방지용으로 설치된 어린이집 CCTV 녹화 장면을 보여 달라는 무분별한 열람 요청이 쇄도하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블랙학부모’들의 보육교사 교권 및 인권침해 논란부터 녹화 영상 공개를 둘러싼 어린이집과 학부모간 갈등, 학부모간 개인정보 유출 시비, 행정당국의 과도한 공개 요구 등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CCTV 녹화 영상 때문에 각종 피해를 입고 있는 대부분의 어린이집들이 침묵하고 있는 탓에 폐해가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어린이집 구성원들은 “CCTV 스트레스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부분별한 공개 요구를 차단하지 못할 경우 국가 보육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판도라의 상자’로 변질될 수 있다며 녹화 영상 공개 기준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아동학대에 이어 식사 잘 하는지, 교사가 잘 보살펴주는지 등 갖가지 이유로 CCTV 영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면서 “안된다고 설명하는데도 막무가내로 요구해 어쩔 수 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영상을 열람한 뒤에 다른 학부모들이 허락 없이 CCTV 공개했다고 역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경기지역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는 학부모들의 보육교사 협박도구로 악용되는데 이어 교사가 차별 없이 보살피고 있는지, 잘 놀고 있는지, 왕따를 당하지 않는지 등 갖가지 이유로 공개를 요구받고 있다.
심지어 정부 및 시·군 관계자들이 놀이시설이나 전기, 식품 등의 점검을 오는 경우까지도 CCTV 영상을 공개하라고 하고 있다.
아동학대 방지라는 당초 목적은 잃은지 오래다.
CCTV 영상 공개도 대부분이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CCTV는 학부모의 아동이 학대 또는 안전사고로 신체·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의심될 경우에 한해 열람할 수 있다.
특히, 즉시 열람은 피해사실이 적시돼 있는 의사소견서를 제출하거나 관계공무원, 어린이집 운영위원장, 지역육아종합지원센터장이 동행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당장 영상 공개만을 요구해 어린이집 원장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공개하고 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윽박·협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개하고 있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현실은 법을 무시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 원장은 “학부모에게 영상을 보여주다가 보육교사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면서 “사방에 감시카메라가 있어 보육교사들도 극도 업무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CCTV 운영의 현 실태를 지적하면서 학부모와 어린이집 사이 완충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완정 인하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예방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올해가 처음이라 보건복지부 지침이 세세하지 않다”면서 “학부모가 어린이집과 경찰 사이 찾아갈 수 있는 완충기구를 만들어 현재와 같은 CCTV 악용 등의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복진·오정인기자/bok@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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